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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까운 산길

35호(진주-통영간)중부고속도와 만나는 산 (2)벽방산

진주-통영간 35번 중부 고속도와 만나는 산 (2)통영.벽방산


연일 매섭고 강한 바람이 분다.

가랑잎들이 산길위를 날아 냉기는 온몸을 감싸안고 완연한 겨울내음이 코를 스치니 산사(山寺)도 깊은 겨울에 잠겨 있는듯 고요하기만 하다. 보름째 죽일넘의 눈은 그칠줄 모르고 서해안 지방을 덮쳐 꽁꽁 얼게해 농민과 서민들은 또 얼마나 실의에 잠겨 있을까?  그리고 또 하나 ...

역시 냄비였다. 금방 달아올라 불길 없으면 이애 식어버리는 냄비.

인내와 지혜. 은근과 끈기로 외우내환을 슬기롭게 대처하던 국민성도 시대의 변천에 따라 달라지는건지 언제부턴가 우리에겐 냄비 근성의 국민으로 전략하고 만 것이다.

전 세계가 또 한번 88올림픽과 2002 월드컵을 치룬 대한민국을 주시한 작금이다. 다름아닌 2005년 송년 줄기세포의 진실 게임에 전 세계의 이목이 모여든 것이다. 취재윤리만 대서특필하며 금방이라도 한 방송사를 날려버릴것 같았던 모 방송사와 모 신문사들 그리고 누리꾼들. 단 하루사이에 무엇 때문인지 꼬리를 슬그머니 내리는 비겁함도 번득인다. 학자는 올 곧은 선비정신이 최소한 있어야 하며 자기일에 뜻뜻하게 책임을 질줄도 알아야 한다. 사회 지도층 인사인 만큼 도덕과 윤리에 한점 부끄럼이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다시 양극으로 치닫는 진실게임에 결국 답답한것은 우리 국민뿐이다. 허긴 뭐 우리같은 범부가 생명공학이니 줄기세포가 뭔지를 모르겠지만 다만 혈세 수백억원의 성과는 알아야 되지 않겠는가? 분명 국민 모두에게 "알"권리는 있을테니까? "봐라 친구야 뭐하노 빨리 안 따라오고 "동행한 친구의 소리에 필자  정신이 든다. 그래 산이나 오르자. 그러나 제발 양은 냄비 기질로 결과도 모르는 일들을 섣부른 자기 판단으로 양극으로 치닫게하는 우(愚)는 이제 제발 범하지 말자.

금방 국민적 영웅에서 천길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이런 허망한 일도 새해부터는 만들지말자.

특히 각 언론사와 자판 두들길줄 아는 우리들이...

 

 

                                                        △ 벽방산 원경

 

이른 아침 35번 통영으로 가는 고속도엔 차량들의 행렬이 많지는 않지만 고성 공룡나라 휴게소엔 벌써 3-4대의 이동식 차량 가판대(만물장수)에서 흘러 나오는 유행가가 너른 공간을 채우고 있고 수십대의 차량들에서 나온 사람들이 식당과 매점에서 요기를 채우는듯 부산하다. 도립공원 연화산 줄기가 좌측으로 따라오다가 멀어지더니 지난주 다녀간 소가야 태조의 건국신화가 깃든 거류산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벽방산(650m)은 통영시 광도면 안정리와 고성군 거류면에 속한산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통영시에 소재한 산으로 알고있다. 벽방산은 원점 회귀 산행지로 일찍부터 가족단위의 주말산행과 평일 여가 산행으로 주를 이루다가 정상에서의 새해 일출과 사방 탁 터인 조망이 알려지면서 어느새 전국의 산꾼들이 찾아오는 통영의 진산으로 터를 잡게 되었다.

동고성 나들목을 나와 좌측 안정공단 방향으로(우측은 거류산 방향)나오면 첫 신호대에서 우측으로 직진하면 공단을 끼고있는 손두부로 소문이 난 안정리다. 도로 우측 고찰 안정사를 물어 들어가면 고속도의 고가도 밑을 지나가게 되고 좌측에 소류지를 만난게 된다. 이 길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넓은 벽방산 주차장에 도착하게 되고 여기가 전광판이 서 있는 벽방산 산행들머리다.  초입부터 적색의 낙락장송 군락이 산객의 기분을 좋게한다. 시멘트 임도를 따라가다가 (임도를 따라가도 의상암 밑에 까지는 갈수있음) 중간중간 리본이 달린 산길을 따라간다.   

  

 

 

▲ 벽방산 산행들머리.

 

 

▲ 의상암. 기도도량

 

벽방산은 산 높이를 생각하며 오르지마라. 해안가의 산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해면에서 고도가 시작되므로 육산의 산들과는 그 높이가 사뭇다르다. 그리고 이 산은 오름만 계속되어 겨울에도 한땀나게 하는 옹골찬 산이다. 불심 찬 산답게 그기에 걸맞는 전설또한 그럴듯해 적어보면 해발 350여미터에서 만나는 은봉암 뒤에 3개의 거대한 바위가 서 있었는데 이곳 바위 하나가 떨어져 나가면서 혜월선사가 또 다른 바위가 떨어져 나가면서 종렬선사가 나오고 현재까지 걸죽한 선사가 아직 나타나지 않아 1개가 남아 있어 언제쯤 중생들을 구원할 거사가 나타나서 남은 바위가 떨어져 나갈지 기대가 크다. 의상대사가 참선 기도했다는 의상암엔 오늘도 초라한 법당에 출가하는 스님의 삭발의 의식이 있는지 무거운 침묵과 제로 목을 축이려 약수터로 가는 산객의 발자욱소리를 낮게 만든다. 물 퍼담는 속세의 중생 손끝에 이 순간만은 욕(慾)이 무욕(無慾)일 것이다.  의상암을 나와 다시 가파른 산길을 재촉하면 비로소 정상아래 안부를 만나 숨을 고르게 된다. 봄엔 이 부근은 얼레지와 진달래가 만발해 아름답다. 안부 이정표엔 우측 황리 그리고 좌측 정상 700미터가 표기 되어있다. 여기서 필자는 곧장 정상쪽으로 가지말고 우측 황리쪽의 암봉까지만 가기를 권하고 싶다. 사진아래의 바위군락이 있는 이곳은 벽방산 정상 조망은 물론 거류산과 구절산 그리고 다도해의 섬들이 그림으로 다가오고 산수에 취하면서 식구들과 둘러앉아 중식을 들기엔 최상의 자리다.

 

 

망부석 : 2005. 12. 17. 필자가 지음

 

 

형제바위 : 필자 같은날 짓고

 

 

식사후 망중한에 잠기다가 다시 일어나 안부쪽으로 내려가 정상을 향해간다. 해마다 봄이면 시집간 누이의 연지찧은 볼과 입술 처럼 산 정수리를 붉게 물들이던 진달래 군락지를 사열하고 천길단애의 벼랑을 가진 정상 아래 암봉에 도착하면 숨이 멎듯이 막힘없이 펼쳐지는 다도해.고성들녁. 그리고 멀리 지리산과 와룡산의 조망 사람들은 먼길 달려온 보람을 여기서 부터 실감하게 되는것이다.

 

▲ 황리쪽 암봉에서 본 벽방산 정상

 

 

▲ 안정공단과 다도해 섬들

 

 

▲ 황리쪽 암봉.

 

 

드디어 정상이다.

강한 바람이 금방이라도 사람을 날려버릴 테세지만 사방 탁 트인 아름다운 조망에 사람들은 미동도 하지않고 태극기 아래에 서 있다. 필자도 낮익은 풍광이지만 다시 취하려 한다. 저기 저 서북쪽의 고성들녁 변방의 소국이었지만 도읍을 정할 정도로 지금의 목민관들 보다 더 신중하고 덕목이 크질 않는가? 백성들의 먹거리를 제일 먼저 생각하였기에 이곳에 터를 닦아 한때였지만 태평성대를 구가 하였으리라. 북쪽으론 길게 뻗어가는 35번 고속도가 발아래로 돌아가는 거류산이 불끈 솟아있고 동쪽으론 남해바다에 발끝 담군 구절산이 마주하니 벽방산과 더불어 삼각을 이루고 있다. 며칠전 거류산 정상에 선 그날처럼 쾌청하면 벽방산 정상은 170여개의 다도해 섬들이 조망되고 거제대교는 물론 그 너머 삼방산이 춤을추듯 보인다.  벽방산도 한산도의 고등산. 미륵도의 용화산(미륵산)과 마찬가지로 불패의 이순신이 적진을 살피기 위한 전망대와 봉화대로 활용한 곳이다. 천길 나락으로 떨어질것 같은 벼랑의 아찔함을 뒤로 하고 이젠 좌측 방향으로 하산이다.  

 

 

 

▲ 정상 밑 벼랑

 

하산길이 평탄하지가 않다.

중간 중간에 로프가 설치되어 있을 만큼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렇다고 겁을낼 이유는 없다. 차분하게 긴장하고 천천히 내려가면 노약자도 어린이들도 다 오르고 내려 갈수가 있다. 분재처럼 잘 다듬어진 소나무가 바위틈새서 푸른빛을 발산하며 모진 생명력을 보여주니 나약한 인간에게 교훈도 준다. 불편한 비탈길을 내려가면 커다란 돌탑 2개가 쉬다 갈것을 자꾸 권하므로 쉬어야 한다. 돌탑을 올려다보면 파란 하늘로 흰구름이 마음까지 풀어 놓는다.  이어 하산길 재촉하면 곧 임도를 만나게 되고 임도를 따라가도 처음 시작한 산행 들머리로 갈수 있지만 이왕이면 맞은편 리본이 달린 숲길로 내려서자. 봄부터 여름까진 신록의 내음이 상쾌하고 계곡엔 맑은물도 흐른다. 한참을 내려오다가 좌측 계곡옆 능선자락에 졸졸 흐르는 석간수는 겨울 매서운 날씨에도 조롱박에 떨어지는 물소리가 풍경처럼 가슴까지 상쾌하게 만든다.    

 

 

▲ 평화를 기원하는 돌탑 우측 하나가 더 있다.

 

 

▲ 하산길 천길단애

 

벽방산 끝자락에 자리한 안정사.

속세의 모든 욕을 벗어놓고 건너려는듯 구름다리 모양의 해탈교를 건너야 경내에 들어설수 있다. 신라 태종 무열왕 원년 서기 654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안정사는 2번의 중수를 거쳐 1400여년동안 법맥을 이어온 고찰로 포립형식의 대웅전을 비롯해 명부전.나한전.칠성각.음향각.만세루.광화문.범종루.천왕문.괘불등이 있다. 겨울속 산사는 무서울 정도로 고요하다. 풍경소리와 가랑잎이 허공을 치솓는 소리만 귓전에 들린다. 속세와는 불과 200여미터의 거리를 두고 이렇게 안과 겉이 확연히 다른것은 중생에겐 불심이 아닌 공심이 있어서일까? 일주문밖 너른 주차장에 흙먼지 날리는 강한 바람이 산객 발길을 재촉한다. 참고로 벽방산은 스님의 바리떼를 닮았다 하여 벽발(鉢)산으로도 불리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