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세요.
회색빛 계절도 다도해 저 끄트머리에서 불어오는 미풍에 동백향기 내뿜는 봄을 이기기에는 이제 역부족인것 같습니다. 희미하지만 거무튀튀한 바다에 벌판처럼 안개가 널리는걸 보니 어느덧 봄이 대양을 건너 느리지만 이곳으로 오고 있었나 봅니다. 불현듯 선자령을 가신다기에 책장을 넘기다가 통영의 지인에게 미륵산 외 다른 산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산양읍에 가면 희망봉이 있어니 가보라고해 산명도 그럴듯하지만 일단은 세계의 뱃사람들이 항해중 희망봉을 제일 그리워 한다는 예전 읽은 글귀가 생각나 한걸음으로 달려 갔습니다. 산양은 통영시의 전신인 충무시와 통영군이 95년 도농 통합을 할 당시 면소재지에서 읍소재지로 승격된 지역으로 산양 일주도로와 달아공원의 낙조가 아름다운 마을로 통영의 모산 미륵산 아래에 따뜻하게 살아가는 작은 어촌입니다. 희망봉. 참 정감있는 산이름이 아닐련지요? 산양읍 사무소 담벼락옆에 차를 세우고 등산로 표지판을 확인하고 신작로 같은 들길을 혼자 걷는데 갑자기 청둥오리 수십마리가 필자의 인기척에 놀라 무논에서 비상하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 간이 떨어질뻔 했지요.
보세요.
우리가 숨죽이며 살아온 지난 몇년의 세월은 고단한 유목민의 삶 같은게 아니었을까요?
끝없이 방황하던 마음.
광활한 초원에 홀로 떠가던 세월들.
평화는 있었지만 진정한 여유가 과연 있었던건지...
늘 우리는 저녁 노을 이었습니다.
보세요.
찬이슬이 익히는 귀한 열매를 기억해보세요 쉽게 익어가는 열매보다 몇갑절 고통속에서 익었으니 그 향과 맛이 깊지 않겠는지요.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그리움 이었으니 얼마나 진한 그리움 이겠는지요. 가파른 비탈길을 단내같은 땀 냄새를 풍기며 올라서니 정상은 역시 희망과 바램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오랜 항해끝에 닻을내려 포구에 안주하며 휴식하는것 처럼 정상의 터는 여유 그 자체입니다. 이곳도 누가 처음 시작한건지는 몰라도 작은 돌탑들이 희망을 담고 풍상을 겪고 있습니다.
봄이오고 있습니다.
당포성지로 가는 양지뜸엔 겨울초가 새파랗게 생기를 띠며 봄색깔을 전해 머잖아 탐라에서 시작한 화신은 이곳을 거쳐 그곳까지 잰걸음으로 가겠죠. 밭둑가에 서있는 해송의 이파리도 옷을 갈아입고 있습니다. 고단한 삶도 그리움에 젖은 애잔한 마음도 파도 숨죽이며 호수같이 펼쳐놓은 이곳에 오면 포근히 감싸줄것 같은 남녁의 갯마을 희미하지만 봄볕은 분명 땅을 적시고 있습니다.
보세요.
단종애사가 슬프디 슬픈 영월의 장릉도 아마 이런 분위기 일련지요 당포성지엔 한산대첩의 진격 북소리와 우리수군 그리고 민초들의 한이 성벽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군요.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작은성터가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덕에 복원되고는 있지만 예산 부족인지 잠시 중단이 되었고 해놓은 성루도 금방 무너져 내릴것 같이 부실이 여기저기 보입니다. 장대비라도 한이틀 내리면 어김없이 무너져 민초들의 혈세만 또 떠내려갈 모양 이군요. 길게 내밷는 뱃고동에 앞을보니 아름다운 섬 욕지도를 향해 욕지호가 조용히 미끄러지며 지나 갑니다. 삼녀도와 살아가는 욕지도엔 긴 투병 생활에 지쳐있는 친구 호야가 살고있죠. 그는 70년초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전우이자 친구 입니다. 불현듯 생각나 전화를 하자 그 친구는 필자의 안부만 당부 합니다.
보세요.
포구의 봄은 육지의 현란한 봄과는 달리 물안개피듯 고요함이 이른 새벽에 흐르고 그 고요속에 고즈녁한 정경이 한겹한겹 벗겨지며 눈앞에 다가 옵니다. 문득 언덕에 홀로앉아 눈을 감아봅니다. 지천명 나이도 중반 하늘의 뜻을 알아야 하는 이 나이에 나는 아직 철이들지 않는걸 보면 이순이 되어도 사람 구실이나 할련지... 장군봉을 향해 가던 발걸음을 멈춘것은 다시 이곳으로 와 포구의 정취를 함께 느껴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증자봉까지 가는 풍화일주 산행길은 가만히 남겨 두어야겠습니다.
그곳에도 오비도의 섬풍광이 봄꽃처럼 다가올 것입니다.
지금 남녁포구에는 님 기다리듯 그렇게 봄이 오고 있습니다.
지금 내리는 실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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