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마져 은빛 고운자태를 뽐내며 바람과 태양을 보듬고 능선에 서서 가을을 부르고 있다. 주목과 천년을 모질게 살아온 덕유는 신성한 향적봉을 올려 주변 봉우리들의 머리를 조아리게 하더니 이어 부드럽게 내린 줄기 하나로 중봉을 만들고 여기서 다시 남덕유로 가는 긴 능선을 어머니 치마자락 처럼 넉넉하게 펼쳐 놓았다. 지리에서 용트림하며 가쁜숨 몰아쉬며 내달린 대간은 동엽령에 닿아 숨을 고르지만 노을진 서녁 하늘엔 애잔한 그리움이 눈물로 붉게 피어 이름모를 들꽃처럼 드러 누웠다. 2006. 9. 3. 오전8시30분 정원을 채운 버스는 함양휴게소를 지나 지곡 나들목을 빠져나와 송계입구에 도착하니 10시20분이다.
덕유산 동엽령. 쉼없이 길을 재촉하던 대간길 산객들은 굽이도는 60령과 삿갓재를 돌아보면 추억처럼 아득한 여정이 어쩌면 한편의 詩가 될 것이다. 오늘 그 그림같은 능선을 향해 간다. 3-4년만에 찾아간 송계계곡 입구 그 사이 세월이 흘러서인지 낮이설다. 신풍령 못봉 송계삼거리 횡경재 송계계곡 구간도 그리 녹녹한 구간은 아니지만 오늘 이 구간 송계계곡-횡경재-송계삼거리-동엽령-칠연계곡 역시 만만한 그런 거리는 아닐듯하다.
가을이다. 물봉선이 계절에 밀려 계곡옆 음지에서 기를쓰며 안간힘으로 버티지만 구절초의 가을노래에 주눅이 들었다. 떨어지는 계곡 물소리도 처량히 들리니 완연한 가을음이다. 졸참나무숲 매미는 여름의 끄트머리에 앉아 산객들 발소리가 들려와도 겁없이 울어댄다. 출렁대는 산줄기. 지난 여름 덕유산은 고산 초원에 원추리가 군락을 지어 아름답기 한량 없었을 텐데 오늘은 형체도 없이 지고 대신 바위 구절초가 산객들을 반긴다. 3.3km의 계속되는 오름길은 송계계곡의 참맛이지만 이곳을 하산길로 정하면 정말 조심해야할 미끄럼 구간 이다. 그 해 필자가 계곡 산행을 온날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 길은 더욱 미끄럽고 조심조심 내려가던 어떤 여자분이 아래로 굴러 발목을 삐었다. 그 후 몇 해가 지난 지금까지도 그 분을 산길에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횡경재를 오르는길은 고통이 따른다. 게으름 피지않고 늘 부지런히 산길을 가건만 오름길은 언제나 고달퍼고 힘이든다. 오늘은 초등학교 아이들 셋이 아버지를 따라 이 산길을 간다. 며칠전 다녀온 푸른 초원을 달리던 몽골의 아이들이 생각나 이 아이들이 대견스럽다. 만 3세만 되면 어김없이 말을 타며 또래의 아이들과 호연지기를 기르는 그들의 용맹성에 손에 티하나 묻히지 않고 귀하게 나약하게 자녀를 키우는 우리네 일상이 서글퍼다.
높고 푸른 하늘에 뭉개구름이 향적봉 위로 떠 간다. 송계 삼거리에서 내다 본 남덕유산 삿갓재 수리덤이 진양기맥 종주길을 생각나게 해 감회가 새롭다. 동엽령에 산객들의 움직임이 보이고 바위 구절초는 사람들에게 무수히 밟혀도 하얀 이 를 드러내고 웃는다. 가을바람이 몰려온다. 풀내음이 상큼하다. 지리 설악에 가려져 언제나 뒤늦게 사람들의 입에 오르는 산이지만 동엽령으로 가는 초원 능선 은 그래도 가슴이 확 트여 상쾌하다.
▲ 1진 송계삼거리 기념 촬영
물론 소황병산 아래 초원지대에 비하면 보잘것 없다해도 남덕유를 향해 가는 능선엔 애잔한 억새의 슬픈노래도 묻어나 낭만과 함께 걷기에 부족함이 없다. 장쾌한 능선에 용트림하다 부드럽게 또아리를 튼 형상의 동엽령엔 계단을 놓는 침목공사가 지금 한창이다. 4.4km의 칠연계곡이 소와 폭(瀑)을 앉혀놓고 길게 드러누워 있다. 1300여미터의 긴 능선이 영.호남의 동서로 가로질러 어디에 내어 놓아도 손색이 없는 산줄기중 동엽령 대간길 어떤이의 눈믈이 생각나 칠연골을 내려가면서도 서쪽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필자도 언젠가 대간길을 가다 여기에 서면 긴 산길 외로워 눈물이 날까.......
▲ 덕암봉 아래서 바라본 동엽령과 남덕유산의 줄기 진양기맥의 시작점이고 남강의 발원지
▲ 동엽령으로 가는 능선
▲ 1312봉
▲ 장장 4.4km의 칠연계곡 사시사철 맑은물이 흐르고 칠연폭포가 압권이다. 중간에 약수터가 있다.
▲ 동엽령. 대간길 쉼터 구실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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