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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며 생각하며

관용은 가족에게 더 필요하다.


관용은 가족에게 더 필요하다


하늘만 회색빛이 아니라 모든게 회색빛 겨울이다.
날씨마져 연일 매섭다.
행인들의 어께는 점차 움추려들고 거리에 나뒹구는 낙엽이 처량하게 보이는 이맘때면 떨어져 사는 가족들이 무척 그리워진다.
2005년 한국의 12월은 서글퍼다 못해 참담하다.후배는 초등학교 동창회 카페에 이 나라는 영웅을 죽이는 사회고 국가라며 흥분을 하더니 취재윤리를 벗어난 모 방송국을 성토하고 훈장받은 교수를 두둔하는 글을 올려 처음에 필자도 어리둥절 했지만 그것이 진실게임의 단초가 될줄을 몰랐다.그 후 국가의 신인도와 대한민국 학자의 양심이 걸려있는 문제라 정말 거짓이 아닐길 내심 바라고 있었으나 이후 진실게임의 2막을 보면서 반전과 음모 그리고 동전의 양면같은 논리가 흡사 수년간 법률서비스업에 종사해온 필자앞에서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이야기만 듣고 소장을 작성하는 이혼소송의 청구원인과 같지 않는가?

소송을 제기하는 원고의 이야기는 드라마고 소설이다.
물론 우리네 삶이 한편의 소설이고 드라마임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살을 맞닿으며 수개월에서 수년 또는 수십년을 살갑게 지내온 사이가 어느새 관용과 용서 이해는 어느 한구석에도 찾아 볼수가 없으니 난감하다. 상대방은 한결같이 철천지 원수고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모든 부정행위의 몫도 늘 상대방에게만 전가 시킨다. 그러므로 자기에게만 진정성이 있고 상대방은 모든게 허언이고 거짓이다. 그만큼 부부간도 갈라서는 기로에 서면 거짓으로라도 자신을 정당화 시켜 승소할려고 애를 태운다. 이렇게 부부간에는 관용적 태도도 아량도 없는것은 왜일까? 그런 반면에 이번 모 교수의 허위로 조작된 논문과 줄기세포에는 굳게 믿었기에 거짓도 용서가 되고 논문에 대한 부정행위가 저질려 졌음에도 우리는 믿는다.로 관용을 베풀더니 결국은 카페회원들이 전국에서 촛불집회를 갖자고 파발을 띄우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야말로 우리사회는 모 교수의 컬럼처럼 거짓말이 별 문제가 안되는 사회가 정말 된것일까?

몇해전에 필자는 협의이혼서를 작성해 주지 않기로 한적이 있었다. 물론 고민하다가 찾아온 사람들에게는 불편 할련지는 몰라도 수백쌍이 필자가 써준 종이 한장에 생면부지의 법관앞에서 2-3분의 요식절차만 거친후 곧장 법원 마당에서 각자의 갈길로 돌아서게 하는 장본인이 되는것 같아 이를 핑계삼아 기피하며 돌려 보냈더니 어떤 여자분이 협회에 고유업무를 기피한다며 신고를해 필자는 졸지에 황당한 일을 당하고 말았다.

필자가 협의이혼서를 작성해 주지 않는다고 해서 갈라설 사람들이 그대로 있지는 않을것이다. 그 뒤 필자는 이 일을 위해 찾아온 사람들에게 협의이혼서를 작성한후 두분 서류를 하루만 제가 보관하고 있을테니 오늘 하루만 두분이서 자식들과 자신들을 한번더 생각한후 그래도 이 길밖에 없다고 판단이 서서 찾아오시면 그때는 두말도 하지않고 이 서류를 드리겠다고 했더니 간혹 뒷날 찾아오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그 길로 다른 사무실을 찾아 갔는지는 모르지만...
검은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서로 사랑하고 아플때나 즐거울때나 언제나 함께 하겠다던 서약의 맹세는 아이들을 하나 둘 낳고 흐르는 세월에 결혼사진의 색상이 차츰 퇴색해 갈수록 망각해져 간다. "우리"라는 울타리에서 마주 보고만 있어도 배고프지 않고 낚은옷을 입고 있어도 더없이 행복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나는 왜 이렇게 사는가?"로 고뇌하며 혼자로 착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혼 사유로 "성격차이"를 내세운다. 과연 나와 꼭맞는 성격의 소유자가 있다고 보는것일까? 지금까지 수백명을 상담해온 필자의 소견으론 아마도 거의 없다고 본다.다만 "우리"라는 틀을 깨지 않을려고 서로가 노력하다 보니 차츰 닮아 가는것 뿐이다. 그 입증의 예로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남편(아내)과 결혼을 하겠느냐는 질문의 답을 보면 짐작이 될 것이다.

온 나라를 아니 전 지구인을 흥분으로 몰고갔던 줄기세포 진위논란의 중간발표를 지켜 보면서 그래도 끝까지 항변하고 고소하는 작태에 공적인 거짓말은 나 자신과는 무관하기에 용서하고 관용을 끝까지 베풀어 가는것을 보고 오늘도 법정에서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하며 자식도 거추장 스러워 뿌리치고 홀몸으로 황망히 법정을 나서는 어미의 뒷모습을 보는 필자의 심정은 착잡하다.왜 저들은 가족들을 위해 한번더 용서하고 이해하는 마지막 관용마져 없는것일까?
남해의 작은섬 선주의 외동딸로 남부럽지 않게 사시던분이 육지의 가난한 집으로 시집와 조모님의 혹독한 시집살이와 대쪽같은 성품의 조부님과 남편을 모신 노모께서는 모질게 사신 애증마져도 정으로 느끼며 사신건지 그래도 12년전 당신곁을 떠나신 아버님의 모습이 생각나시는지 흥얼거리는 콧노래에 부부의 연(緣)과 연(戀)이 묻어난다.
마른잎 대굴데굴 어디로 가느냐
길 고 긴 겨울이 하도 추워서
따뜻한 품속을 찾아갑니다.
바람결에 마당 한켠으로 굴려가는 이파리 소리에 멀리 서울에 사는 딸아이.
군대에 있는 아들이 오늘따라 무척 그립다.
이제부터 설날까지는 더 없이 가족들이 그리워질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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