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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동정맥 길

낙동정맥 14번째 길 (운문령-고헌산-백운산-소호고개)


낙동정맥 14번째길
운문령-892봉-외항재-고헌산-소호령-백운산-
소호고개(17.8km)
2006년 1월15일 날씨 약간 흐리지만 포근함

이곳에도 이런 산이...


숨차게 운문령에 도착하니 가지산을 향해 시산제 산행을 온 사람들이 줄지어 올라간다. 영남알프스 산군들과 우리가 갈 고헌산 봉우리에 상고대가 피었다.
아니다 한(恨)과 보고픔이 서로만나 그리움이 되어 영글었다. 산은 분명 산은 아직 다 만나지못한 그리움이다.

 

그래서 산은 물소리 바람소리도 아침 고향강가 물안개보다 더 아련한 그리움으로 피어오른다. 우측 능선으로 접어들어 10여분쯤 진행하다 뒤돌아보니 지난번 칼바람을 헤치며 숨가쁘게 달려온 가지산릉이 설화보다 더 고운 상고대를 피워 아름답기 그지없다.

 

거대한 산군(山群)이 아래로 내려다 볼땐 사람들은 너무나 작아지지만 땀 흘리며 그들을 다가가 만나면 인간의 발자욱도 더 없이 위대함을 느끼는게 산과의 만남이다. 상운산 우측 이름모를 계곡의 폭포도 빙폭이 되어 바위만한 얼음덩어리만 계곡을 막고섰다. 기품있는 솔이 푸른가지를 내밀어 야무지게 한땀흘릴 892봉을 향해 우릴 떠밀어 가쁜숨 몰아쉬며 우족으로 올라서니 여기도 상고대가 종주대를 반긴다.




892봉



상운산 가지산릉에 상고대가 피어 아름답다.

사진 두어장을 찍고 정면을 쳐다보니 바닥에서 정상까지 올라야할 고헌산이 검은 그림자를 드려놓고 필자를 노려본다. 790봉과 외항재 사이 넓은 분지에 대현마을과 도로가 만들어져 사실 이곳도 맥은 끊어졌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른 아침이라 비탈길이 약간 얼어있어 진행하는데는 별 무리가 없겠지만 땅이 녹으면 애를 먹일것이 자명한 사실이다. 키작은 철쭉군락이 무릅을 치지만 이내 790봉에 도착하니 좌측으로 돌아 나가는길과 직진으로 가는길이 있어 지도를 펴 확인해보니 좌측으로 돌아 나가는길이다. 낙엽밑에 얼음이 스스히 녹아 비탈길은 빙판보다 더 미끄러워 안감힘을 다해 버틸려고 하니 관절에 힘이 가중되어 무척 아프다.

 

목장으로 연결되는 포장된 임도길에 당도하니 오래전 조성한 초지엔 회색빛 농촌실정을 대변하듯 퇴색한 잡초만 무성하다.

이쁜 물레방아가 있는 가든을 지나 921번 도로에 오니 여긴 온통 한우식당이다. 건너편 능선으로 오를 길을 찾지못해 망설이고 있을무렵 강릉 그분이 길안내를 해줘 이동했다. 능선을 올라가도 되지만 능선 및 도로를 따라가면 절개된 외항재를 만나고 고사리의 간절한 바램이 적힌 고헌산 초입이다.

일행이 가져온 계란에 황매 막걸리 한잔씩 한후 일어섰다.



고헌산 전경. 정상부근엔 하얀 얼음꽃이 만개했다.



외항재 밑 대현마을. 한우식당들이 즐비하다.

외항재. 고헌산 등산로 초입

고헌산 초입 솔향이 가득차 온다. "할아버지께서 물려주신 아빠의 산!이제부터 우리가 아끼고 가꾸겠습니다."라는 산골 초등학교 5학년 정윤지양의 글을 상북면 청년회에서 입간판을 만들어 세워놓았다. 예사로운 산은 아니었구나 지역민들의 사랑과 인근 울산 부산지역에서 즐겨찾는 고봉이고 아름다운 산이다.

 

산속 고요를 일행들의 가파른길 오르는 숨소리가 깬다. 산불차단용 방화선길이 시작 되었다. 돌맹이와 토사가 나뒹굴어 진행하기가 매우 사납다. 사실 방화선이라고는 하지만 무용지물이다. 폭 20미터도 안되는 방화선이 강풍에 무슨 불을 차단한단 말인가?

 

오히려 이로인해 폭우때 산사태의 위험만 불러일으킬 확율이 매우높아 보인다. 숨고르기를 한후 다시 일어섰다. 어느 누가 처음 쌓기 시작한건지 모르지만 돌탑2개가 산객들을 반겨 첫 돌탑에 돌맹이 2개를 살짝 얹어놓고 일행뒤를 따라간다.

 

1022봉에서 바라보는 고헌산 정상과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주릉은 과히 일품이다. 억새는 황금빛이 되었지만 지난 가을 이곳을 찾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분명 잊을수 없는 가을동화를 들려 주었을터 며칠전 산길에서 세월이 가며를 흥얼거렸다는 그분의 이야기에 필자도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회상에 잠겨간다.

 

 "가을잎 찬바람에 흩어져 날리면 켐퍼스 잔디위에 또 다시 황금물결 잊을수 없는 시절 시절 시절들 루루루루 꽃이지네 루루루루 가을이 가네 중략 세월이 가네 젊음도 가네 그때다 "회장님 점심식사 자리 쥑이네예 빨리 오이소"소리에 후다닥 놀랐다. 우측 황금빛 능선을 따라 하산하는 연인들의 모습은 식상하지 않는 활동사진 그 자체요 겨울연가 보다 더 아름다운 추억의 한 장면이다.






1002봉 아래 돌탑. 첫 돌탑에 돌맹이 2개를 얹고..

우리와 반대방향으로 진행하는 산객들(서울서 오신 낙동정맥종주단)일일이 불러 과메기와 소주 한잔씩을 들게하여 보내고 일어섰다.방화선길 어떤이는 수월하다고 종주기에 적었지만 여간 사납고 불편한게 아니다. 내려가다가 우리도 여기쯤 돌탑기단을 만들어 놓으면 얼마 지나지않아 커다란 돌탑이 형성될 것이라고 말하자 일행들 어느새 무거운 돌맹이들을 들고와 금방 기단을 만들었다.

 

선두와 무려 수킬로미터나 떨어진 서울서온 종주대의 여자대원 1명이 금방이라도 쓰러질듯 지쳐 고헌산을 향해 방화선길을 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종주길은 의지만 가지고는 힘들다는 사실을 배워간다.

 

그리고 무심히 앞서가는 사람들이 원망스러워 보인다. 혹 우리 대원들도 뒤 쳐진 날 모른척 남겨 두고는 휑하니 달려가지는 않을련지... 두서면에서 시작하여 도장골로 가는 임도를 만났고 소호령을 향해간다. 만리장성 처럼 끝나지 않는 방화선의 끝은 어디일까?








만리장성 같은 방화선의 끝은 백운산 정상이였다.

정상 표지석이 정맥팀을 반긴다. 알프스 산군과 고헌산이 검은 그림자를 길게 드리며 휴식을 취할 태세다.

산행중 겨울산행은 추억을 생각하게 한다고 했던가? 모든걸 벗어던진 산천초목에서 조차 그리움이 피어난다.

 

솜사탕처럼 부풀어 오른 상고대를 쳐다보면 아직도 피끊는 청년의 순애보도 있다. 산을 만나는 사람들이 수월하게 산을 만나는것도 좋지만 그것은 언제나 미완으로 보여 필자는 몇년전 부터 긴 산길 타는것을 즐긴다. 용트림하듯 휘돌아가는 맥줄기 그것은 용기요 희망이며 젊음이다. 이제 이 낙동정맥 진행중에도 대한민국의 척추 백두대간을 오를 준비를 해본다. 억지가 아닌 진정 국토의 맥을 이해하고 사랑할 사람들만 이번에는 함께 가고싶다.

 

더 늙어가기전에... 정상 바로 아래 암봉에서 마지막으로 캔 하나를 마시고 불끈솟은 봉우리를 향해 일어섰다. 봄이면 백운산도 고운 철쭉을 능선마다 피우는가 보다 도열한 철쭉군락이 예사롭지 않고 산길또한 호젓해 연인도 그리고 단독산행도 나름의 멋이 있을것 같다. 지금은 대부분의 백운산길은 양탄자처럼 가랑잎들이 싸여 사각거리는 소리가 참 듣기좋다. 중간에 로프를 설치할만한 위험구간을 만나고 이어 다시 또 조심해야할 구간을 만났다.




연인은 물론 부부사이에 제일 중요한것이 사랑과 믿음이다. 그리고 그것을 행동으로 실천해야 그 본분을 다하듯이 정맥을 함께하기로 작정한 사람들도 진행중 고난과 불협화음이 생기더라도 믿음과 사랑으로 끝까지 행동을 같이 하는게 큰 의미가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오늘은 좀 지루한 구간이였다. 고헌산과 백운산은 일일산행을 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큰산이며 아름답고 주변 산마루금이 일품이다. 허지만 이 구간 90%이상이 방화선길로 되어있어 진행하기가 매우 거추장 스러웠다고 대원들은 말한다.

 

키보다 더 크게자란 억새밭길을 지나 좌측으로 돌다가 내려서니 소호고개다. 여기서 대원들은 5.4km를 더 전진하자며 필자의 눈치를 살피지만 모른체하고 오늘은 여기서 끝내자고 했더니 젊은 대원들은 불만의 표정들이다. 사실 필자도 충분히 더 갈수 있었지만(후래쉬 준비해감)정맥길은 무리를 하다보면 자칫 안전사고를 당해 수개월간 산길에 나설수도 없음을 피끊는 젊은이들이여 아시는가?

 

평생 처음 발디딘 대호마을 정자나무옆 경주슈퍼 필자 일행옆으로 빙빙도는 토종닭이 왜 그날따라 통통하게 보이는지...마을로 내려오는 산길은 예전 유년시절 버드나무 서있던 신작로를 닮아 어찌나 정겹게 보여 몇번이고 신발로 자갈을 훔쳐보았다. 산중에 전원주택 단지가 조성되어 있어 의아해 했더니 바로 찬물내기 계곡 때문이었음을 귀가길에서 알았다. 찬물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