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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동정맥 길

낙동정맥 종주 16번째 주왕산구간 (황장재-피나무재)




 강바닥 자갈 굴리는 여울물 소리가 제법 경쾌하다.
더디게 아니 조급증 내지않고 저 멀리서 오는봄은 느닷없이 몰아치는 강풍도 홑옷
으로 막아서서 유두처럼 꽃망울을 밀어내며 산중 특유의 나즈막한 목소리로 봄소리
를 낸다.


선착장 공터에 앉아 은빛 그물을 다듬는 노어부의 손끝에도 풍요로운 봄은 날줄
씨줄로 드나들고 성급하게 강가에 철렵을 나온 주름진 촌부의 어슬픈 투망질에도
봄은 은빛으로 허공에 동그라미를 그린다.


속세의 속물들을 닮아서일까? 한치의 오차도 없이 서열대로 다툼없이 꽃을 피울
것은 꽃을먼저 피우고 잎 먼저 내밀것은 잎을 차례대로 내밀던 자연의 서열마져
이미 깨어진지 오래지만 그래도 아직은 시건방 떨며 역행하지 않고 질서있게 조화를
이뤄가는 자연은 언제나 경이롭다.


특히 해거름 길게 드리워진 산 그늘을 이고 병풍처럼 길게 늘어선 산줄기의 장쾌함은
대간과 정맥 그리고 기맥종주가 아니고는 평생 눈(目)과 몸으로 만나기 어려운 대자연
의 아름다운 그림이 아닐까?



    


황장재. 안동과 예천을 가는 34번 국도상의 고개. 이 구간은 주왕산 줄기로 국립공원내에 속함


  
  




 7번 국도를 가다 34번 분기점을 내려 예천과 안동방면으로 한참을 달려가면 국립공원 주왕산내에 속한 낙동정맥길의 시작점인 황장재가 나온다.
이 고장 특산물인 대게를 케릭터로 내세운 영덕군의 표지판이 회색빛 이른 아침을 열심히 걷어내고 인적이 끊어진 휴게소옆 공터엔 정맥길에 나선 3명의 남정네들이 라면국밥(죽?)을 끊여 요기를 하고있다.
 
필자의 인사말에 반갑게 화답을 하더니 인정있게 좀 먹어라고 권한다.
금방 아침을 먹고 왔다고 하자 소주라도 한잔 하라는말에 한사코 뿌리칠수가 없어 작은잔에 한잔을 받아 마시고 일어서니 자기들이 뭐 도와줄것이 없냐고 말해 문득 "이심전심"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구미에서 3. 26. 황장재에서 만난 3분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드리며 언젠가 정맥길에서 만나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온통 회색빛이다. 간밤 사람을 금방이라도 날려 보낼것 같이 난리를 치던 강한 바람도 저 암색의 개스를 한줌도 보내지 않았다.
 
낙동정맥 주왕산 구간 표지판을 카메라에 담은후 능선을 향해 오른다.
이제부터 장장 11시간 동안 이 능선을 시작으로 높고 낮은 봉우리를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자신과의 싸움은 물론 거침없이 북상하는 봄 오는 소리를 들으며 피나무재를 향해 갈것이다.     


      


   



 

 여기도 봄이다. 아니 열심히 그는 오고있다.
진달래가 하얀이브닝 드래스를 살짝 벗어니 봉긋 유두빛 꽃망울을 내밀었다.
지난 겨우내 몰아치는 설한풍을 온몸으로 맞고 눈덮혀 산새들 마져 자리를 떠나 황량하고 적막만 감도는 척박한 능선에서 서럽다 울지 못해도 다시 가지 끝마다 푸른 생명의 시작을 알리는 희망의 몸짓을 눈앞에서 펼쳐낸다.
 
그리고 이름모를 야생화도 가랑잎더미를 헤집고 나와 아직은 수줍은듯 고개를 떨구며 티없이 맑은 하얀 마음만 가슴에 가득 담고있다. 첫번째 표지석을 만났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황장재가 화장재(?)로 표기되어 길 안내를 한다.
분명 가르키는 방향은 황장재고 지도에도 화장재라는 고개는 아무리 찾아도 없다.
 
산이 우리에게 안겨주는 봄은 과히 환상적이다.
꽃과 숲 그리고 초록의 능선과 처자들의 가슴을 헤집는 바람도 산은 우리 가까이에
있는 봄과는 색깔도 소리도 사뭇 다르다. 기약없이 발걸음마져 힘겹게 하던 엄동은
하루가 다르게 퇴색하며 계절 끄트머리로 자꾸 밀려나고 있다.    







   


                  



 

 갈평재에 당도해 제대로 된 표지판을 만나고 한땀 흘리며 595봉을 올라 능선길 재촉하는데 눈앞에 대둔산(905m)이 정말 무섭게 노려본다.
10여시간 이상 산길을 걸었다고 다들 쉽게 말할지 모르지만 사실 필자도 8시간 이상 넘는길은 언제나 부담이 된다.
 
그리고 실제 산행시간은 자신의 몸에 맞추어야 운동의 정석이고 욕심내어 과부화 현상이 일어나면 오히려 건강을 헤친다는게 맞을것 같다.
다만 종주산행은 중간에 변변한 탈출로도 없고 만약 있다해도 자칫하면 다음 구간 진입하는 거리가 더 멀어 낭패를 당할수가 있어 할수없이 무리를 하면서 가야한다.
08:23.황장재 3.7km 먹구등 5.2km 표지판옆에 송이 재배농가 주인이 설치한것으로 추정되는 야영터와 출입통제 비닐선을 보면서 오히려 통제줄을 설치하지 않는것이 송이 도둑을 줄일수 있지 않을까?

 
혹 저 통제줄 때문에 송이 광고를 한것같아 걱정이 된다.
허긴 자기 영역 표시일수도 있다.
09:03 편편한 능선에 풍상겪은 정말 오래된 주왕산 국립공원 시멘트 표지석을 보았다.

이제부터 주왕산 국립공원내의 능선을 걸어가는 것이다.

    


    


야영터. 어슬프게 보이지만 퍽 견고하다.


    


주왕산 국립공원 표지석. 건설부로 표기되어 있으니 아마 국립공원 지정시 세운듯...

 신록이 짙어면 정말 아름다울것 같은 참나무 숲길이 계속 이어진다.
정확한 이정표가 없어 짐작되는 두고개를 넘고 그렇게 멀리 느껴지던 먹구등(846.2m 어떤곳은 846m로 표기됨)에 도착하니(11시03분)먼 길을 온 산객을 지치게 하고 11시49분경
명동재에 당도하여 지도에 표시도 없는 헬기장(875m)에 도착하니 허기가 진다.

 
잡목 숲길을 따라 내려가니 오늘구간의 절반지점인 느지미재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왕거암을 향해 일어섰다. 뒤돌아보니 멀리 타고온 산줄기가 아득하다.
13시43분경 왕거암을 지나고 예전 군복무시 무장공비들이 사용할법한 아궁이가 달린 야영터가 정맥길에 있다.(14시19분)

 
아궁이엔 불쑤시개를 하려는듯 가랑잎이 가득 쌓여있다.
다시 가파른길 숨헐덕이며 오르니 이번에는 비박용으로 맞춤인 계단바위를 보고 앞부분만 약간 막으면 우중이라도 숙박이 가능한 침대 형태다.
계단바위 지붕부분은 지금껏 잡나무들로 조망한번 못한 산객에게 보상이라도 해주듯 타고 내려온 그림같은 산줄기를 눈앞에 데려다 놓더니 덤으로 주왕산 절벽의 한부분도 보여준다.
 
건너편 중간지점엔 정자의 마루같은 편편한 바위에 낙락장송이 그림자를 드리니 주왕산 산신님의 별채가 아닐련지...
다시 정원같은 굴참나무 숲길을 호젓히 걸어 청련사로 가는 삼거리에 도착하니(14시43분)여러갈래의 밧줄이 묶여있어 보기가 참 흉하다.   



    
    


    







 

 리본을 따라 올라가니 헬기장이 나온다.
정맥꾼들의 리본이 아름답다기 보다는 고행으로 눈앞에 다가오고 이들의 발길이 곳곳에 파헤쳐 끊어진 낙동정맥의 줄기를 이어간다.
그런데 헷갈리지 않을것 같은 이 지점이 부산쪽으로 내려가는 정맥팀들은 진행길을 주의해야 할 지점 좌측길을 따라가니 리본이 없다.한참을 내려가다가 불길한 예감에 헬기장으로 되돌아가 맞은편길(우측)과 그 아랫길을 확인차 진행해보니 여기도 처음에는 리본이 있다가 없어졌다.

 
지도를 펴 확인하니 처음 간 길이 확실해 내리막길 열심히 달려 내려가니 간간히 리본이 이어진다. 알바를 22분여간을 한 셈이다. 대신 필자가 다음 사람들을 위하여 리본을 확실하게 달았으니 길 찾기가 용이할 것이다. 앞서간 3명의 정맥팀들도 우측으로 갔다가 되돌아 온건지 한참을 헬기장에서 그만두자고 실랑이를 하더니 필자 뒤를 따라오지 않는걸 보니 아랫길로 탈출을 한것같다.
 
지도에 표기된 주산재는 정맥길에서 떨어져 있는줄도 모르고 돌탑 서너무더기 쌓인 안부를 주산재라 생각하며 거의 다 왔다고 생각해 긴장을 푼것이 후반 진행에 상당한 애를 먹었다. 3번째 야영터도 아궁이에 가랑잎이 가득차 금방이라도 불을 지피면 바닥이 따뜻해질것 같다. 다시 굴참나무숲을 진행하다 좌측을 보니 비석이 눈에보여 다가가니 중추원부사를 지낸 청송심씨묘지터다.
 
무덤은 없고 2개의 입석과 묘지석만 참나무숲에 가려져 장구한 세월을 보냈나보다.
16시35분 잠시 휴식하며 뒤돌아보니 어느새 산줄기는 날 따라오고 있고 건너편으로
진행할 장중한 산줄기가 눈앞에서 요동치며 해거름을 맞고있다.갑자기 산줄기가 80여도로 급강하 하니 지친 무릅이 무척 고통스럽다.좌측으로 도로가 보이고 드디어 철망 가로막힌 피나무재에 도착했다.(18시01분)
 
비좁은 철망옆을 돌아 도로로 나가니 이곳이 영덕군 달산면과 청송군 부동면의 경계재다. 장장 11시간의 산길 힘들었지만 또 한구간에 발자욱을 남겼으니 흐뭇하다.
강한 바람이 등을밀며 귀가길을 재촉한다. 강구항 대게집들의 호객행위는 언제쯤 사라질지 부담스러워 다시는 갈것 같지가 않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