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새 해를 보고온지가 엊그제 같은데 살짝 비켜가도 좋을 설이 또 목전에 닿았다. 설은 흩어진 가족들이 다시 모이고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향수에 젖다가 이맘때면 불나비처럼 고향으로 모여든다. 어린시절 설은 봄.가을 소풍날과 운동회 그리고 난생 처음으로 기차를 탓던 수학여행날을 손가락을 세며 기다리던 설레임 같은것이 있었다. 특히 닷새마다 서던 장날 중 대목 장날에 귀한 쌀(지금은 천덕구러기 전략)두어되 내다판 어머니의 손엔 어김없이 설빔으로 새 고무신이 들려져 있어 머리맡에 신발을 두고 빨리 설이 오기를 기다린 기억이 지금 새롭다. 그러나 작금의 디지털 시대에 맞는 설은 어른들에겐 두렵고 무섭기만 하다. 좀처럼 풀릴 기미가 없는 경기는 가뜩이나 주눅들게한다. 그기다가 더욱 억장이 무너지는것은 대기업들이 설에 지급하는 성과금과 상여금의 액수가 웬만한 중소기업과 개인 사무실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년봉보다 훨씬 웃도는 액수고 보니 상여금은 고사하고 체불임금에 차례상 마져 차리지 못하는 근로자들은 망연자실로 허탈감에 빠진다. 여기에도 양극화는 있는것이다.재래시장 이지만 그래도 설 4-5일전이면 불티나게 팔리던 신발가게와 손쉬운 고향길 선물의 대명사였던 어른들 내의로 특수를 누렸던 속옷가게도 하루에 5-6명정도가 찾는단다. 이런 현실인데도 연일 언론은 설 대목경기가 풀린다며 장밋빛 기사를 쏟아낸다. 필자가 근무하는 법률서비스업(변호사.법무사)계는 불황을 넘어 직원 봉급은 물론 사무실 운영비 마져 충당이 되지않아 변호사가 밀린 차임료와 공과금을 내지못해 야반도주를 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물론 여기엔 본인 사망시까지 업을 할수 있는 자격증의 문제와 인터넷 보급 그리고 과다의 수급인원이 가져다준 업보다. 필자는 맞아 죽을 소린지 모르겠지만 각종 자격증에도 정년처럼 제한년수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시시때때로 변하는 신선한 첨단의 서비스를 새 사람들로 부터 받을수 있기 때문이다. 경험칙의 아나로그 시대가 헛기침 하며 디지털 시대를 지배 하겠다는 생각은 이제 과감히 버려야 하지 않을까? 올 설도 가진자들을 제외한 덜 가진자들은 힘겨운 명절을 맞이하고 차례가 끝나기가 무섭게 고향을 떠날 궁리로 머리속이 복잡할 것이다. 그러나 어렵지만 올해는 우리들 기억 저편에 있는 어릴적 설 추억들을 기억하며 사는곳으로 돌아가자 연분홍 치마자락 허공에 날리며 화장을 하지 않아도 연지 찍은 볼보다 더 아름답던 누이들의 널뛰기. 가오리 방패연이 키재기를 하며 비행기 보다 더 높게 날았던 고향강둑의 해질때 까지의 연날리기. 집앞 한길을 다 차지해 부메랑처럼 날려보던 자치기. 그리고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마을의 안녕과 가족의 건강을 빌던 정월 대보름날의 달집짓기와 태우기. 그것들은 진정 고향의 내음이요 우리 살아가는 이야기인 것이다. 필자도 올 설은 유난히 기다려진다.임관후 처음으로 가족들 품으로 돌아오는 아들녀석과 긴 그리움에 실로 오랫만에 설이 기다려진다. 물론 아들녀석은 고향집에 와도 아비보다는 친구들을 먼저 찾아 가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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