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아 !
옆집 아이들이 부르면 절대 대답하지 말고 이번엔 꼭 더위를 팔고 와야된다.
오곡밥을 가득 퍼주시며 우리들에게 더위를 파는 친구들을 경계하라는 어머니의 당부도 삽작문만 나서면 이내 망각해 더위를 집요하게 팔려는 친구의 꾐에 속아 어김없이 대답을 하고 더위를 산 기억이 정월 대보름날 아침이면 생각이 난다.
이후 대나무로 엮은 복조리를 들고 다섯집 이상 밥을 얻어려 다녔고 복조리를 팔려다니는 친구를 따라 가가호호를 방문하며 마을 어른들께 세배를 올린 기억도 정말 이제는 아득한 추억이 되었다.
기산들판의 논두렁과 밭두렁을 중원을 정복하듯 서로 많이 태울려고 분주하게 불씨가 담긴 깡통을 돌리던 일들이 주마등 처럼 다가온다. 마을분들이 강가 자갈밭에 달집을 커다랗게 지어 놓고 달을 기다릴때 겨울 내내 날리던 연을 수거하여 달집의 대나무에 걸어 액을 다 가져 가라며 태웠다. 세수대야 보다도 더 큰 보름달이 옵실 산 위로 둥실 떠오르면 모두들 합장을 하며 온갖 액(厄)이 사라지고 소원이 이뤄지길 빌었다. 특히 자식이 없는 아낙들은 귀한 자식을 점지해 달라고 손바닥이 닯도록 빌고 또 빌었던 시절이 오래다. 그리고 모두들 그렇게 된다고 믿었다. 보름간 지속되던 설은 달집 태우기로 마감을 하고 다음날 부터 남정네들은 다시 팔뚝을 걷어붙이고 들판으로 나가 새일을 하기 시작한다.
충분한 휴식후에 얻어지는 노동력은 곧 풍년과 연결된다고 생각한 선조들의 지혜가 번득인다.
태어 나면서 부터 농경문화를 제일 먼저 접한 필자는 음력 정월 초하루 설부터 보름까지의 기간에 펼쳐지는 걸죽한 놀이들이 점차 사라지는게 너무 아쉽다.
풍물놀이(우리고장 방어로 메구.매구(??))의 지휘자격인 상쇄(쇠)(깽과리)를 담당하셨던 울 아버님의 인기는 세상 떠나신지 오래인데도 마을 어른들의 입으로 전해져 오고 명창과 대적할만한 판소리는 동네분들의 심금을 울리셨던 기억도 생생하다. (지금도 생존하신 마을 어르신들이 필자를 만나면 하시는 말씀)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액(厄)을 물리치게 하는 이 놀이엔 해학과 염원이 담겨져 있었다.
마른 오징어로 얼굴에 가면을 만들어 쓰신분. 긴 담뱃대를 든 꼽추. 망사처럼 생긴 검은 가방에 총을 멘 포수. 새색시로 분장한 여장 남자의 춤사위는 찌들게 가난한 농촌 사람들에게 보름간의 단 기간이지만 웃음과 낙천을 만들어 준것같다.
이런 세시풍속도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겐 생소한 문화겠지만 몇해전 부터 필자의 고향에선 이 아름다운 행사가 마을번영회와 청년회 주도로 희미하지만 그 맥을 이어가므로 정월대보름날 우리고향은 흩어진 마음들이 다시 하나로 뭉쳐져 신명나는 화합의 장을 만들어 간다.
물론 이웃간의 돈독한 정이 넘쳐 나는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자 !그럼 그 화합의 현장으로 한번 가보자. / 2006. 2. 12. 정월보름날 기산들에서
시작을 알리는 한판
지휘자격인 상쇄쟁이의 일갈
푸짐한 음식도 나누고
액을 물리치는 2판
드디어 달이 동쪽 옵실 산위로 솟았다. 합장하는 모습이 경건하다.
달집 태우기를 준비하고
드디어 점화.
마을의 번영과 가정의 평온을 기원하며 이 땅의 모든 액까지 다 태우려는듯 불은 맹렬히 타오르기 시작한다.
달이 두꺼운걸 보니 풍년이 들게야 . 농자가 천하의 근본이라고 위정자들 아무도 말하지 않지만 누가 뭐래도 먹거리를 생산해내는 그대들이 이 땅을 지키는 보루다. 그래 이 땅 모든 재앙과 액을 달님 당신이 다 거둬가시길.....
얼씨구 덩더쿵 돌아라 뛰어라 어깨춤이 절로난다.
필자의 인터뷰 사진은 카메라 기자의 실수로 희미하다.
불꽃위로 보름달이 밝게 비추고 있다.
점차 불길은 사그려들지만 휘영청 보름달은 만인의 머리위로 떠 있다.
아듀 2006년 정월 대보름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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