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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며 생각하며

貧者의 一燈은 사라진건가?

빈자(貧者)의 일등(一燈)은 사라진건가?
불기 2550년 4월초파일을 생각하며...
 
불교는 종교중에서 신비하고 색다른 종교라 했던가?
권위주의 절대적이 아니고 지상인 차안(此岸)에서 하늘인 피안(彼岸)으로 해탈하여 승화하는 인간
적인 종교여서 사람을 끌어들인다고 어느 책에서 읽은적이 있다.
더 나아가 포용적이고 관용적이며 평등하다고 역설했다. 절대적인 자력과 절대적인 타력이 공존하는 불가사의한 종교 그래서 미약하고 천박하며 가난한 사람들이 쉽게 접할수 있었던 그 불교의 방향이 현재 본래의 취지대로 흘러가고 있는지 천박한 무지랭이는 알리없지마는 간혹 산사를 찾아간 발걸음이 되돌아 올때는 왜 그리도 천근같은 무게가 느껴지는것인지...
 

 

 
부처님 오신날인 음력 4월초파일을 며칠 앞둔 싯점에 무위산 문수암을 찾아간 어제(4. 22.)봄비는 보리이랑을 넉넉히 적셔 푸른빛이 더욱 짙다.
산등성을 오르는 운무가 비 그침을 예고하고 굽돌아가는 고갯길은 고행의 길마냥 가파르다. 
몇해전 무위산능선에 중장비의 굉음이 지축을 흔들더니 추계재(낙남정맥 길)에서도 보이는 대불(大佛)이 옥상에 정좌해 있다. 쾌청하면 다도해가 그림처럼 다가오던 산마루는 약사도량이 들어서서 해동제일이라고 자랑하지만 산객의 마음은 왠지 착잡하다.
 

 

요즘은 사찰마다 무슨 공사가 그리도 많은지 천길단애에 터 잡은 문수암은 그 규모는 작지만 고찰이다. 신라 신문왕8년 서기 688년 의상대사가 구도행각중 청량산(무위산)노승으로 부터 현몽을 얻어 걸인으로 화현한 문수.보현.두 보살의 인도를 받아 청량산에 오르니 해동절경지인 한려수도의 섬들이 마치 비단위에 수놓은듯 아름다워 천하절경지인 이곳에 문수암의 터 를 잡았다. 신라 전승시대에는 국선 화랑들이 이 산에서 연무하였고 이들의 모습이 신선과 같이 보여 산 아래 마을 이름이 무선리다.     
 

 

 

가파른 암자에 가정에 평화와 식구들 건강을 기원하는 초파일 연등을 접수하려 온 가족들과 연인들의 발길이 부산하다. 홀로간 산객이야 바쁠것도 서두를 이유도 없어 이곳 저곳을 살피지만 사진한장 찍을 공간이 없어 부아가 난다. 등(燈)을 메다는 줄이 마치 거미줄처럼 늘어져 온전히 사진 한장을 담을수가 없는것이다. 불현듯 貧者의 一燈이 생각난다. 지금은 화재 때문인지 촛불을 켜는 등이 사라져 밤새도록 등을 지키던 정성도 아련한 추억이 되었지만 더욱 서글퍼 지는것은 공양미 한되 시주로 온 가족의 안녕을 빌던 가난한 사람들의 貧燈은 이제 암자나 사찰 어느곳을 가도 볼수가 없다.

식구들 이름과 나이를 적은 문종이를 들고 어머니를 따라 燈을켜려 가던 금화사 가던 그 해 초파일 밤이 오늘 무척 그립다. 

 

 

 

천불전의 천불상

 

 

사진 위 보현사 전경  산봉우리에 터를 잡았다.

사진 아래 옥상에 정좌한 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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