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서둘려 갈수가 없다. 이른 아침 신작로를 따라 가면 산중에서 내려온 맑은 개여울 소리 가 길손의 두귀를 쫑긋 세우게 해 잊고 산 고향 실개천 바닥 자갈들을 굴리며 흐르던 여울목 이 눈앞으로 선명하게 다가와 길손 발을 더디게한다. 일붕사 초입은 신작로다. 예전 아름드리 버드(미류)나무 가 서 있던 자갈 지천으로 깔린 흙먼지 일던 그런 신작로는 아니지만 오랫만에 포장길이 아닌 흙길이라 그 감회는 새롭다. 따라서 일붕사 가는길은 어릴적 추억을 어른이 되어 지금 다시 만들어 가는길이다. 일붕사는 산중에 있는 절이 아니다. 지리산 밑 실상사 처럼 그저 평지다. 자굴산자락 봉황산 봉황대 깎아지른 절벽아래 터 잡아 속세를 빤히 바라보고 있어 일붕사도 속세와의 연을 끊을수는 없을듯하다.
여름날 일붕사는 매미소리가 환청이 되는곳. 푸성귀 내음이 코를 자극해 산방에 들어서는듯 착각을 불러 일으키고 도열한 선사들의 비문 과 인자하고 근엄한 석불들이 마음에 다가와 오랫만에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호젓한 산사여행은 아무래도 혼자가 좋다.(기산들 생각) 특히 흙길을 따라 찾아가는 일붕사의 여행은 마음과 귀를 온통 열어 생각하며 가는 길이기에 더욱 혼자가 좋지 않을까? 한줌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처마끝에 매달린 풍경은 길손의 머리위에서 은은한 소리를 낸다. 일붕사 풍경소리. 그 오묘한 소리의 깊이를 느끼는데도 둘이 혹은 여럿이 아닌 혼자여야 그 진정한 깊이를 느낄 수 있을것이다.
일붕사는 오래전인 1982년 궁유지서 우 아무개 순경에 의한 총기와 수류탄 투척으로 희생된 56분의 궁유 사람들을 극락으로 인도한 곳으로 위패가 모셔져 있다. 경내에 들어서면 봉황대의 절벽과 마주 선 하얀 석탑이 대웅전과 무량수전을 호위하듯 서서 길손을 내려다본다. 우측 대나무 대롱을 타고 흘러내린 맑은물은 명경대를 만들어 물욕 찬 중생들 마음 훌훌 벗어 놓으려는듯 하얀 연의 자태가 참 고고하다. 물소리가 워낙 낭랑해 머리속까지 맑게 해주니 이곳에 잠시 머무는 길손 마음이 평온하다.
대웅전으로 가는 구름다리 아래도 연이 떠 있다. 마애불의 자애로움을 닮아 검은 바위를 감싸안은 강인한 담쟁이의 푸른잎은 부처님의 손으로 오만 풍상에도 끄덕없이 삼라만상을 품는듯해 정겹고 봉황대 바위속을 뚫어 양기를 없앤 이곳 대웅전과 무량수전은 화마를 피하는 비책 이전에 신비에 가깝다.
검푸르게 변하는 산하. 그리고 들. 풍상을 겪은 이끼낀 바윗돌마져 오늘 길손의 마음을 푸르게 만드니 산봉우리로 훌훌털고 오르는 운무가 빈손으로 왔다가 다시 빈손으로 돌아가는 섭리를 일깨워 주는것 같다. 그래 다 세월이 가면 부질없는 일이야... 내일은 어디로 걸망메고 떠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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