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몽골리아!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왔던가?
알타이 산맥 그 험한 산줄기를 넘어 시베리아의 혹한을 뚫고 압록강을 건너 이 땅에 터 잡아 뿌리를 내린 일단의 무리들.
그들이 이 땅 우리의 선조들이니 바로 몽골인이다.
2006. 8. 16.
청주 국제공항은 중국 문화를 체험하려는 국제청소년연맹 산하 초등학교 학생들의 출국으로 국제선 청사가 시끄럽다.
내 아이들은 상상도 못한 조기 국외 체험 현장을 볼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언제나 짠하다.
사치가 아닌 진정한 외국의 문화체험을 통해 강탈 당하는 우리 문화를 되찾고 굳건히 지켜가는 애국심을 가슴 가득히 채워
오길 기대해 보면서 필자도 출국대에 섰다.
어 !
비행기가 예전 사천공항에서 서울이나 제주로 가던 108인승 작은 기종이네? 일행들의 표정엔 순간 불안감이 역력하다.
독수리 휘장에 AEROMONGOLIAR가 선명히 새겨진 MO805편은 이들의 불안감을 일순간에 종식 시키려는듯 활주로를 거침
없이 내달리다 힘차게 도움닫기를 하더니 창공을 향해 솟아 오르고 이내 낮이익은 내 땅을 저기 저 만치 밀어내며 서해상공
을 지나 중국의 텐진과 베이징 영공을 거쳐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타르(바토르)상공에 도착해 고도를 낮추니 눈앞에 펼쳐지는
푸른초원의 산군들에 간간히 기암까지 직립해 정말 장관이고 평원을 갈라놓듯 사방에서 모여든 이 나라 사람들의 생명수인
오르혼강의 지류인 토라강 줄기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울란바타르 징키스칸 국제공항.
3시간40여분의 여정뒤에 만난 협소하고 초라한 공항 곳곳엔 800여년전 세계사의 중심에 선 위대한 인물 칭키스칸의 얼굴이
새겨진 포스트가 눈길을 끈다.
그리고 공항 주차장엔 우리나라 중고차들이 즐비하게 주차된 광경을 보니 타국이 아닌 한국의 어느 작은 도시에 온듯해 첫 인상
이 너무좋다. 한반도를 쉴새없이 누비던 이들이 다시 이곳으로 와 대륙의 푸른 평원을 질주하는 몽골마(馬)들과 달리기를 하니
가슴 뭉클한일이다. 연일 한국에서는 폭염으로 시달렸지만 이곳은 그늘에만 서면 냉기가 돈다.
처음만난 칭기스칸의 후예들.
유창한 한국말 그리고 얼굴 모습이 우리와 너무 닮아 한국 유학생인줄 착각한 가이드 이소라 (한국인들이 작명해준 이름)와
간비. 둘다 한국에서 5-6년간 체류 하였으며 특히 이소라는 의정부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녀서인지 한국어 실력이 수준급
이다. 함께온 간비(33세)역시 이곳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후 코리아 드림을 꿈꾸며 한국의 중소기업에서 6여년간 일하다
귀국했다. 혹 악덕 기업주를 만나 한국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을까 내심 염려가 되어 물었더니 한사코 그런일은 없었다고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몽골 입국 심사대를 빠져나오자 "소라"는 70여km 동쪽에 위치한 이 나라 국립공원
테를지를 이동한다며 버스로 필자 일행들을안내한다. 이 버스 또한 아시아 자동차가 제작한 우리중고 버스다.
한국에서 관광버스로 사용 된 이 차는 조흥은행의 로고가 새겨진 좌석번호가 세월의 무상함을 말해준다.
이 곳의 중고차들은 한국에서 구입한 그대로 한글마져 지우지 않고 사용하고 있어 물었더니 한글이 그대로 있어야 더 가치가
있어 보인다나..."소라"는 이 도로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고속도로 입니다.
테를지를 가는 이 울퉁불퉁한 2차선이 수도를 관통하는 고속도라니...
우리나라 2차선 지방도보다 질이 현격히 떨어진다.
그러나 도로 양옆으로 펼쳐지는 더 넓은 초원에 여유롭게 풀을뜯는 양떼 소떼 말떼 야크떼는 도로까지 점령해 이들이 지나갈때
까지 차가 멈춰선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다.
몽골을 푸르게.
나랄이흘 새마을 운동 시범단지.
한글 입간판이 한국화 되어가는 몽골의 현 실상을 대변하듯 길 옆에 서 있다.
몽골의 지형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대로 평균 해발 1500여미터 이상의 고원지대다. 초원과 사막의 나라.
13세기 불세출의 영웅 칭기스칸이 대제국을 건설하여 16세기 제국이 해체될때 까지 쿠빌라이 칸과 티벳정복으로 라마불교를
수용한 알탄칸으로 이어지면서 주변국가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몽골.
오랜 세월 몽골로 부터 피해를 입었던 중국인들이 몽골을 비하하기 위해 몽고 蒙(우매할 몽)古(옛고)라 부르기도 했다.
지금은 호시탐탐 몽골을 자기들의 자치구로 만들기 위해 온갖 선심 정책을 펴고 있지만 정작 몽골인들은 중국을 가장 적대국
으로 생각한다. 혹 길림성 고구려 문화를 자신들의 변방국 역사로 치부한것 처럼 몽골도 자치구로 복속시켜 칭키스칸마져
자신들의 영웅이라고 말하지는 않을련지...
국민 총인구 280여만명이 굳건히 나라를 지킬수 있는건 절대적인 인구증가를 위한 다산정책 과 풍부한 지하자원의 활용으로
경제력을 향상시켜 나라를 지킬터 간바와 소라에게 10명씩 아이를 낳아라고 하자 이들이 크게 웃는다.
(지금 우리나라도 출산장려를 할 판이니...)
국립공원 테를지내 원주민 생활 체험장인 겔(게르)
게르 (GER)
유목민들의 지혜가 모인 주거공간 한낮에도 시원하다.
허지만 양 냄새가 너무 심해 처음엔 들어가기가 ...
8월에도 게르 가운데 난로에는 초저녁과 새벽녁에 불을 지피려 여직원이 들어온다.
자연은 정복해서도 정복 당해도 안된다.
1691년 몽골을 완전 정복한 만주족은 몽골족의 독립성 및 유대의식을 말살시키기 위해 라마 불교를 부흥시키고 인구를 감소
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가족중 남자 1명을 반드시 승려로 입적시켜 결혼을 금기 시켰다.
이 관습은 현재도 일부 존속하고 있지만 200여년간의 끈질긴 독립 투쟁을 벌여 마침내 만주로 부터 독립한 살아있는 부처 즉
생불로 추앙된 복트칸에 의해 신권정치를 펼쳐왔으나 중국과 러시아등의 내정 간섭으로 완전한 독립국 지위를 누리지 못하던중
1921년 혁명의 영웅 수헤바타르에 의해 완전한 인민혁명을 성취한다.
매년 이 날을 기리기위한 대대적인 축제가 열리니 아깝게 놓친 나담축제다. ( 매년 7.11-13.)
수헤바타르 동상이 있는 수헤바타르 광장이 울란바타르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다.
자연과 친화를 느끼는곳 테를지 유목민 체험장.
중첩하여 늘어진 산줄기의 윤곽선을 "그리메"로 노래한 어느 시인의 싯귀가 떠오를만한 광경이 필자의 눈앞에서 펼쳐진다.
이곳이 그리움이고 보고픔이다.
이를 그리워 하지 못함은 살아도 살아 있음이 절대 아니며
그리워 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그리움이 얼마나 애잔한가를 모를것이다.
첩첩의 산 그림자는 지리산 덕유산등에서나 찾을지 모르나 넉넉한 너그러운 그리움은 이곳 테를지의 평원에 지천으로 늘려
있으니 내 그리움은 여기에도 따라왔지 않은가?
이국의 낮선땅.
테를지 국립공원내 유목민촌에서 고급스런 유목민 생활로 들어간다.
거북바위. 몽골인들이 신성시 하는 바위로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나... 필자는 아무것도 안빌었다.
날이 밝았다.
하늘과 맞닿은 초원.
신이 빚은 바위 군락들.
테를지는 지상낙원이라는 표현밖에 더 이상 할말이 없다.
척박한 산등성엔 지천으로 핀 에델바이스(솜다래)는 너무 흔한탓인지 양떼도 말떼도 그리고 소들마져 지근지근 밟고 지나간다.
간밤에 잠을 청하기 위해 마신 술이 과해 잠은 좀 잤지만 뱃속이 거북하고 머리가 무겁다.
그래서인지 양고기 냄새만 맡아도 토할것 같아 물에 설익은 밥을 말아 요기만 채우고 일정에 따라 나섰다.
우리나라도 아직 굿당이 성행하듯 이곳 몽골에도 샤머니즘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돌무지(어워)에 돌3개를 던지고 어워를
세바퀴 돌아야 행운이 온다고 하는데 한바퀴를 돌때마다 한개씩 돌을 던져야 한다.
이 나라는 3이라는 숫자가 서양의 7과 같은 행운의 숫자라 한다.
거북바위 아래 장신구를 파는 노점상.
가격이 만만치 않다.
초원의 길. 정말 어디론가 정처없이 가고싶어진다.
어워. 우리의 당산나무격.
거북바위는 몽골 토속신앙의 상징이고 어워는 신앙을 모시는 사당과 같다.
그들은 이곳에서 국태민안을 빌것이고 가정에 무탈을 기원할 것이다.
대자연을 이리저리 이동하며 목축업을 해야하는 이들에겐 1-2시간이면 작업을 할수있는 게르와 어워는 어쩌면 자신들의
분신과도 같은게 아닐까? 거북바위 아래 작은 어워에 1달러를 놓고 산야를 걷는 필자의 행보가 막힘없이 진행되길 빌고
동으로 만든 불상과 장신구등을 파는 부부의 상술이 보통이 아니다.
나는 언제 저렇게 에메랄드 빛 하늘을 보았던가?
유년시절엔 우리 하늘도 저렇듯 파란 하늘에 새하얀 솜털이 뭉개뭉개 피는 하늘이 있었다.
고향집앞 강물을 입대어 마셨고 반딧불이가 개울둑에 별처럼 떠오르던 맑은 여름밤이 있었다.
우리는 3살쯤 세발자전거를 타지만 몽골인은 징키츠칸의 후예답게 말을탄다.
양치는 모녀를 초원에서 만났다.
화장기 하나없는 얼굴은 강한 햇빛을 받아 거칠다 못해 타버렸다.
필자가 카메라를 들이대며 웃자 엄마는 아이를 불러 앞에다 세우고 잠시 포즈를 취해준다.
주머니속에 들어있는 사탕을 주자 아이는 금방 미소를 짓고 잠시 후 엄마는 아이를 번쩍안아 말에 태우더니 초원 저 멀리로
사라진다. 참 이곳은 만3세 정도면 누구나 말을 타고 다닌다.
정처없이 길 떠남에 반한 나 자신은 몽골의 초원을 말로 달리고 싶다는 강한 충동에 사로 잡혀 15불을 지불한후 말위에 올랐다.
그는 낮선 이방인에게 눈길도 한번 주지 않지만 나그네가 지금 무엇을 결행 할련지를 아는듯 대초원을 향해 달려나간다.
생전 처음 말을 타 보기에 두려움에 오금이 저리지만 우리 역시 기마 민족의 후예임을 아는듯 말은 마상의 나를 아주 안전하게
목적지를 돌아 다시 제자리에 데려다 준다.
매와 살아가는 우크라이나 청년.
대 자연을 말과 함께 달려본 승마 체험을 마치고 고향강 같은 테를지 강가에 도착하니 허허 영락없는 고향 영천강과 닮았다.
여유로운 집 아이들인지 강에서 멱을 감더니 이내 추운지 강가로 달려나온다.
언니인지 아이들의 등을 큰 수건으로 감싸주며 춥지라고 말하며 웃는 모습이 우리네 고향강가 풍경과 하나 다를게 없다.
잠시후 한무리의 서양 베낭여행객들이 말을타고 강을 건너고 이어 덩치 큰 몽골처녀가 말을타고 강을 건너던중 귀하디 귀한
핸드폰을 그만 강에 빠뜨리고 말았다. 전원이 켜지지 않게 밧데리 부터 뽑아야 할텐데...
길손이 더 애가 타는것은 넉넉치못한 이들의 생활과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테를지 켐프로 돌아온 우리는 저녁식사를 끝내고 캠프파이어장으로 모였다.
약간의 백야현상 탓인지 밤9시가 되어도 대낮처럼 훤해 이국임을 암시하더니 잠시후 어둠이 멍석처럼 깔린 밤하늘에 촘촘히
들어서는 별들의 자리잡기 전쟁이 시작된다.
이곳에서 보는 북두칠성은 더 정겹다. 누이와 멍석에 누워 바라보던 견우와 직녀가 쉬 건널수 없는 은하수강이 압권이다.
원주민이 불 피운 장작더미를 건드릴때마다 반딧불이 같은 불티가 별이 되어 밤하늘을 수놓는다.
우리를 위해 시작한 켐프파이어에 외국인들이 먼저 찾아와 자리를 잡자 촌장은 따로 켐프파이어를 해 주겠다며 장소를 옮길것
을 권하지만 이미 분위기에 실망한 일행 두엇이 춥다는걸 핑계로 마나님들과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혼자인 필자는 밤하늘의 별만 실없이 세다 하얗게 온밤을 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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