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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산행, 여행

사잉 밴오 몽골리아(2)


사잉 밴오 몽골리아(2)

 

2006. 8. 18.

여명의 붉은빛이 바위산을 비춘다.

홀로 산위에서 내려다 본 평원은 한마디로 평화요 자유며 넉넉한 행복감이

온통 충만해 있다. 여기보다 더 평화스러운곳은 없으리라.

산은 자락을 내려 초원을 보듬고 초원은 산을 배위에 올려 섬으로 띄운다.

그리고 여유로운 자태로 초원은 여왕의 부드러운 비단 치마자락을 넉넉히

펼쳐 빛살 좋은 아침을 또 하나 만든다.

언젠가는 이곳도 추억을 되씹어며 살아갈 것이다. 굽돌아가는 아름다운 산릉

처럼 그렇게 그림같은 추억이 영상으로 다가올것이다. 간밤 알파인 강아무개씨

의 지축을 흔드는 코골이에 잠을 못잔 필자는 오늘 여정이 녹녹치 않을것이고

다가오는 오늘밤도 무서운 공포로 또 밤을 샐것이다.

 

 

 

야생마일까?

고삐없는 말2필이 긴 울음을 내밷더니 초원을 향해 질풍같이 달리는 광경은

정말 장관이다. 이틀하고도 반나절을 초록물살에 잠겨 있었으니 필자의 마음도

어느새 초록빛이다. 옷을벗어 짜면 금방이라도 초록물이 떨어질것 같은 테를지

의 반유목민 생활은 사무실 정리로 심란했던 내 마음을 정화해주고 잠시지만

작은 내 삶을 되돌아 볼수 있어 역시 여행은 그것도 오지의 체험은 생활에 활력

소가 되어 늘 친하고 싶다. 이제 잠시후 이곳을 떠나야한다.

현대와 고전이 공존하는 이 나라 수도인 울란바타르를 향해...

 

정전으로 식사 준비가 되지않아 "빨리빨리"의 후손들은 현지식으로 요기를

빨리 취한후 캠프장을 나선다.

이틀반나절 동안 게르정리(이불 안갈아줌)와 하루밤 2번씩 (밤11시. 새벽4시

경) 난로에 불을 지피는 원주민 처녀들의 일도 결코 수월하지는 않아 보였다.

 

떠나는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이 아직은 서툴어 보여 더 정감이 가는

풍경이다. 저들과 기념 촬영 한장 못한게 영 섭섭하다.  2번씩이나 옷을 홀라당

벗고 있는 샤워장으로 들어와 물 온도를 조절해 준다며 필자를 기겁시킨 

샤워장지기 처녀는 오늘 또 셀수없이 바닥을 닦고 또 닦을것이다.

 

 

우리나라 학생 수련장 같은곳의 위 "어워"에 한.중.일.관광객이 모였다.

초원지대의 양떼를 보려온게 아니라 "어워"에 소원을 빌기 위해서인지 가이드

의 지시에 따라 3바퀴를 돌고 한바퀴를 돌때마다 돌 하나씩을 던져야 하지만

주변에 돌들은 모두 던져저 돌하나 구하기가 수월치 않다.

르의 기념품 상점은 그야말로 성업중 필자도 여기서 징키츠칸의 물통 하나를

구입하면서 한때 전쟁광으로 치부되어 숙청당한 징키츠칸이 정복자로서의

용맹함과 강한 리드십을 떠올리며 푸른 산등성 부하들과 마상에서 촌락을 내려

다 보는 광경이 금방 말을 타고온 7-8세정도의 아이에서 풍겨져 나온다.  

 

 

▲ 토속신앙의 상징 어워. 우리나라 성황당과 같다

 

 

울란바타르를 가는 길목 유목민 촌락에 잠시 들렸다.

고속도로에 말떼들이 길 한가운데를 점거하여 자동차 운행을 방해한다.

기력 쇠잔한 노친네를 모시고 사는 며느리와 손자인지 한눈에 50-60년대 고달

팠던 우리들 삶과 진배없다.

떼자국이 줄줄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한건지 아이들의 눈에는 빛이없다.

이방인의 침입에 놀란 세퍼드가 큰 소리로 짖어대자 할머니는 개 이름을 부르

며 달래지만 소용이 없다. "마유주"(말 젖을 발효시킨 우리나라 막걸리와

같은..)를 한잔씩 일행들에게 권하는것 같아 필자는 아예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첫날 밤 독주의 여파가 아직도 남아 있기에...

 

  

 

▲ 고속도로서 대치한 말떼와 화물차

 

 

▲ 원주민(유목민)의 게르. 수도 울란바타르를 제외한 초원에서 생활하는 유목민들은 대다수 원형

    천막인 게르에서 생활한다.

 

 

▲ 이들의 생명줄인 말들 갓 태어난 망아지들도 있다.

 

 

호텔 몽골리아.

양고기 요리에 질린 우리를 위해 특별식인 중국요리를 대접 하겠다며 "소라와

간비"는 숙박업과 중화요리를 하는 호텔 몽골리아로 우릴 데려갔다.

자금성을 방불케하는 웅장한 건물들과 조경 및 조형물이 대단하다.

먼저와 식탁에 앉아 가벼운 야채를 놓고 담소를 즐기는 라마교 신도와 승려들

이 참 여유롭게 보인다. 소고기와 돼지고기 그리고 닭고기를 튀긴(탕수육) 요리

가 입에 잘 맞아  양고기로 몇끼를 부실하게 먹었던 끼니를 일시에 채웠으나

느끼하기는 마찬가지다.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와 러시아 농촌 풍경을

닮은 도심의 한부분을 쳐다보며 야생마처럼 초원을 지나 왔지만 늘 혼자는

외롭나보다.

 

 

땅은 넓지만 주거공간은 생활할 만큼에 길들여져 우리처럼 큰 평수에 사활을 거는일은 없을것 같았다

 

 

▲ 호텔 몽골리아 앞 도로 아마 이 도로가 수도와 연결되는 도로인듯...

    러시아의 원조를 많이 받아온 몽골은 간판등에 러시아인과 글씨가 자주 보인다.

 

 

울란바타르.

"붉은영웅"이라는 뜻의 몽골어.

자이승 전망대서 내려다 본 몽골 수도 울란바타르 전경이다.

전쟁을 승리한것을 기념하고 사회주의를 받아들인 50주년 기념으로 1971년에

세운 기념탑이 바로 자이승 승전탑.

정상 기념탑 곳곳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상황을 묘사한 모자이크가 있다.

 

혀로 아리랑을 구슬프게 연주하는 노점상 주인의 고단함이 가락을 타고 귓전을

때리고 승전탑 계단을 오르며 공연장 안내 티켓을 나눠주던 하얀 미니스커트의

아가씨는 연인에게 사랑의 문자를 보내는지 주저앉은 모습이 우리 아이들과

흡사하다. 도심 주변을 남강같은 토라강이 흘러간다.

 

 

▲ 자이승 승전탑.

    계단에서 무슨 공연 안내티켓을 나눠주던 아가씨는 연인에게 문자를 보내는듯 엄지문화에 푹 빠져

    있다. 초원의 야생마를 그린 그림과 엽서 그리고 몽골인들의 복장 및 모자를 판매하지만 중국처럼

    호객행위는 없다.

 

 

이태준 열사의 기념공원. 선생님의 이력은 아래 사진에 자세히 나와있어 설명은 생략한다.

이국에서 보는 태극기는 가슴까지 뭉클하게 한다.

 

 

 

▲ 이태준 열사 기념공원과 울란바타르를 바라보는 대불

   이 대불은 한국인들의 모금과 정성으로 건립한 것이다.

 

몽골 수도 울란바타르 하늘에 휘날리는 태극기를 보면서 나는 흥분한다.

공무원만 바로 서도 부강할 우리나라.

부정과 부패가 사라지고도 남을 역사를 지닌 민족.

계급이 오를수록 집 칸수를 줄이라는 강한 선비정신이 필요한 공직사회. 

왜 오늘 불현듯 이렇게 서글퍼질까? 

 

"저기 저곳에 대한민국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아파트를 무상으로 지어

준다고 약속을 했는데 아직까지 아무 소식이 없네요."하는 20대 현지인 소라양

의 말에 필자는 주무부처와의 협의.시공회사 선정.공사비 책정등 여러가지

현안들이 정리 될려면 최소 3-4년은 걸리므로 그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더니 "그럼 그때는 그 대통령 임기는 끝나잖아요"라는 말에 긴 여운이 담겨져

있다. 공식적인 발언이면 임기 끝나도 될꺼야.?????아가씨! 모르긴 몰라도...

  

 

오후 3시 10분경 흥인사에 도착했다.

고찰답게 고색이 완연한 경내에 들어갈때 저절로 옷깃이 여미어 지고 부처님

앞에 놓여진 몽골인들이 가장 소중히 여긴다는 9가지 물건들의 용처가 참으로

신기하다. 처마 밑 풍경은 우리것보다 둔탁하게 보이지만 지붕 용마루의 문양

은 어찌나 정교하고 이쁜지중국것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라마불교의 교리도 역시 남을 속이지 말고 착하게 살아야 극락을 간다.

곳곳에 그려놓은 지옥의 그림이 퍽 인상적이였다.

 

 

 

 

 

한국의 거리다.

낚은 전기버스와 낮선 간판들만 없다면 대한민국 자동차들이 질주하는 울란

바트라 거리풍광은 이국이 아닌 자국의 작은 도시로 착각할것 같다.

 

엘란트라.엑셀.크레도스.봉고1톤.그레이스.그리고 간간히 보이는 렉스톤과

스포티지 중고차의 행렬이 꼬리를 문다.

허긴 이곳엔 서울의 거리도 지정되어 많은 한국인들이 즐겁게 찾는다니 몽골은

이제 먼 나라가 아닌 우리와 가까운 지척에 있는 우방국이다.

 

비가 오지않아 물이 귀해서인지 새차 중고차 구별없이 세차도 제대로 하지않고

흙묻은 그대로 달린다. 우리가 상상할수 없을 정도의 게으름으로 착각할 정도

로 지저분하다. 택시 시내버스 모두가 다 그렇다. 펌퍼가 뜯겨져도 미등이 깨여

져도 그들에겐 오직 달릴수만 있다면 고칠 필요도 없이 생긴대로 달린다.

에서 멈춰설때 까지 ...

 

 

▲ 전기버스. 우리나라엔 아마 즉시 폐차할 노후차량.

 

아 !규모는 적지만 전시품은 대단하다.

국립 자연사 박물관.(사진 촬영 절대금지) 횡단보도에 사람이 지나도 달려오는

차는 웬만해선 멈춰서지 않으므로 정말 좌.우를 살피며 길을 건너야 한다.

자연사 박물관 입구 횡단보도를 그렇게 건너 1층 로비에 도착하니 우리나라

처럼 중.대형의 건물에 전시품이 빈약한 것과는 달리 무척추 동물에서 공룡의

뼈대.고대 포유동물의 잔해등 자연사의 발달을 한눈에 볼수있어 청소년들에겐

더 없이 좋은 현장 학습장.수만종의 새.동물의 박제.매머드급 화석.70만년전에

생존했다는 "티라노사우르스"의 뼈.와 각종 공룡뼈와 공룡알들을 복원해 지난

6월 2006년 고성공룡세계엑스포를 주최한 고성군의 인접에 있는 필자를 무안

하게 만든다. 또한 역사박물관 전시실엔 유목민들의 초기 정착시 부터 몽골의

유물과 생활 토기와 기구들이 인류변천사를 대변해 주고 있었다.

 

특히 그들은 전 세계 인류발생지가 이곳 몽골임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으며 

대단한 자부심에 젖어 있다.

한식으로 저녁을 먹었지만 천지를 진동하는 코골이에 또 밤을 새었다 홀딱...

 

 

▼ 사진 아래 국립 자연사 박물관 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