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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 산길에서

넌출거리는 설악. 여름이 가네 ...



넌출거리는 설악(雪嶽).여름이 가네
미시령-황철봉-저항령-마등령-금강문-금강굴-비선대-와선대-설악동
15시간

 

역시 설악이다.

아니 산객이 설악을 갈때마다 설악은 기분좋게 아름다운 그림을 가득 펼쳐 보여주니 설악과 필자와는 연(緣)이 깊은가 보다.

사람들은 금강산의 절경에 넋을 놓는다고 하지만 그것은 설악의 깊이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설악은 안(內)과 겉(外)이 고르게 사시사철 아름다운 산 이다.

운해가 넌출거리며 설악의 준령을 넘어 갈때를 보라 !

심장이 멎을 만큼 감동으로 다가온다. 덩달아 산줄기도 덩실덩실 춤을추며 운해를 안는다.

산중바다.

수많은 섬들을 돌아 항해하는 설악은 지겹던 여름을 천천히 일엽

편주에 실어 보내고 있었다. 

 

 

미시령.

자동차도 숨이 차 쉽게 오르지 못하는곳.

10년도 더 넘은 세월이 지나 미시령 휴게소에 도착하니 옛 영광은 어디에도 찿을길이 없고 여름을 밀어내는 스산한 바람만 휑하니 필자를 돌아 나간다.

그 해 여름 수많은 사람들로 발을 들여놓을 틈도 주지않던 이곳이 이렇게 황량한 들판으로 변해 추억을 기억하는 산객의 마음은

허황하다. 미시령에서 마등령길 이곳 역시 대간의 구간길이다.

 

사방은 아직 곤한 잠에든 새벽녁 멀리 속초앞 동해바다의 미명이 개벽의 시작처럼 구름을 깨우고 도회의 회색 불빛도 선잠을 깨며

부시시 눈비비며 일어선다.

 

어둠속에서 초입을 헤며다 겨우 찾아 오르니 키는 작지만 빼곡히 찬 잡목숲의 간밤 비와 이슬이 바지와 신발을 적셔 영 성가시다.

특히 등산화를 두고와 트레킹 샌들로 장시간을 걸어야 하는 중압

감에 발걸음이 무겁다.

 

 

1시간여를 걸어 능선에 올라서니 대간길이 뚜렷이 보이고 눈앞엔 점입가경의 그림이 고단한 순간을 일시에 날려 버릴 태세로 구름

바다를 펼쳐 놓았다.

 

향로봉이 손에 잡힐듯 선명하고 그 뒤로 금강산의 줄기가 동해로 내려가는 모습이 뚜렷하다. 우측 끄트머리 예전 포대경으로 본

해금강이 바다에 떠 있겠지... 황철봉을 오르는 너덜지대서 결국

샌들을 벗고 맨발로 바위를 탄다.

 

 

아 !울산 산신이시여 !

오늘 산객은 당신에게 정말로 감사하다는 말 전하고져 합니다.

저 아름다운 울산바위를 부지런 떨며 종종 걸음으로 가지고 갔다면 지금쯤 동토의 땅이요

누구나 쉬 갈수도 없는 저기 향로봉 너머 금강산 에 내려놓아 우람하게 자리 잡고 있었을것을 당신의  소걸음이 여기 설악에 내려 놓았으니 이 어찌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않으리까?

 

능선 저 너머 있던 운무가 필자의 고마운 마음을 아는지 울산바위를 향해 춤사위를 펼치며 다가가니 정말 아름다운 그림이다.

 

 

 

울산바위와 달마봉.

 

 

겹겹으로 포개진 산줄기는 성벽처럼 길게 늘어져 서 있다.

설악은 진한 초록과 기암 너덜 그리고 파란 하늘과도 잘 어울린다.

그리고 숲과 꿈을꾸는 산새소리가 고요를 깬다. 

숲과 꿈을 꾸는것은 산새만이 아니다.

산객들도 어께걸이로 서로를 보듬고 서있는 숲을 지날는 꿈많은

아이들 처럼 꿈을꾼다.  

대청봉.중청.소청.귀때귀청이 키재기를 하며 하늘에 닿아 천상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듯 말이없다. 이때 유영하던 운무가 심심한

듯 하얀천으로 이들을 감싸 안으며 산중 고독을 즐기는 산객들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저항령에서 마등령으로 가는 능선을 오르기전 다시 너덜지대를 만났다. 우람하고 아름다운 울산암은 점차 시야에서 사라지고 너덜지대 아래 저항골의 물빛은 동해로 가는지 은빛 물줄기만 길게

시야에 들어온다. 대청봉으로 선녀가 내려 왔을까? 운무가 대청봉 정상을 향해 피어 오른다.

소청에서 장수대로 가는서북릉 줄기를 가다 물이 다 떨어져 탈진 일보 직전까지 갔던 어느해 여름이 생각이 나 갑자기 등골이 오싹

해져 온다. 선녀의 보드라운 치마자락을 잡고 오르던 구곡담 계곡

의 폭포와 소 그리고 봉정암의 약수맛 진저리나는 소청 대피소의

이(齒)가는 소리와 천둥같은 코골이에 침낭을 들고 대피소 바깥을

나왔으나 그곳에서도 무수히 떨어지는 별들을 보며 밤새 떠드는 사람들 때문에 잠자기를 포기하고 별을 밤새 가슴에 담았던

기억이 오늘 다시 설악에 서니 감회가 새롭다.

    

 

 

저항골 물은 설악동을 거쳐 동해로 가겠지...

 

 

1249봉을 넘고 설악의 관문에서 휴식한후 비탈길 조심조심 내려 무거운 다리를 끌고 드디어 말잔등 같은 마등령에 도착했다.

가슴 뭉클해져 오는 감동의 리본."지리에서 백두까지" 3부자의

백두대간종주 리본이다.

 

정말 의미있는 이들의 산길 필자 가슴에도 감동으로 젖어온다.

일주일전 이곳 산객이 운해에 허우적 거리는 마등령 대간길을

3부자가 걸어갔다. 부자간의 돈독한 정과 사랑을 느끼는 드라마

같은 산길 이었으리라.  아버지의 인생길에 아들들이 동행하니

그 길이 곧 아들들의 길이다. 그 길은 서로가 서로를 챙겨주는

사랑만이 충만한 길이다. 아니 평생 추억이 되는 세상 가장 아름

다운 산길 이 되었을 것이다.

비록 철망이 앞을 막아 백두까지 갈수는 없겠지만 부자간의 진한

정과 사랑은 휴전선을 넘어 금강을 지나 우리 민족의 정신이 고스

란히 솟는 백두영봉에 닿으리라.

 

참 부럽다는 생각에 오늘도 군인의 길을 택해 부하들과 전투 훈련에 여념이 없을 아들을 잠시 떠올리며 언제 지리산 종주라도 하며

아비의 마음을 전해주고 싶다.

 

 

 

▲ 마등령. 미시령에서 9시간여를 걸어 도착했다. 

 

설악의 하늘금이 사라졌다.

아니 설악이 바다속으로 가라 앉았다.

짙푸른 숲도 금강과 견줄만한 암봉도 그리고 넌출거리던 산줄기도

모두 은빛 물속으로 가라앉아 적막만 흘러 산객을 무섭고 외롭게

한다. 공룡능선도 용아릉도 천길 물속으로 사라졌다. 암울한 세상

살이 개벽이 시작 되려나...

무심코 필자의 생각에 저 멀리 공룡릉에 섬이 떠오른다.

 

 

비선대로 가는 하산길도 역시 만만치않다.

애초에 미시령에서 이곳을 오는 자체가 쉽게 갈수 있는 그런 산길

은 절대 아니다. 헤쳐모여를 반복하는 운해로 선명한 설악의 그림을 가져 갈수는 없지만 설악의 또 다른 진수를 맛보기에 충분하다.

 

초행길이라 주변의 암봉과 바위들의 이름을 몰라 짐작으로 기억하며 간다. 금강문 같은곳을 지났고 유선대 장군봉 같은걸 담느라고

정신이 없다.

 

 

 

 

 

내 갈길은 아직도 멀다.

샌들을 신고 장시간을 걸었더니 버팀목이 없는 발목이 욱신거리며

아파온다. 골바람이 간간히 정신을 맑게해줘 분재같은 금강송이

더 아름답게 보인다.

 

공룡릉의 명품 조망길. 지금 산객은 그 산길로 하산을 하면서 공룡릉을 바라보니 작은형제.큰형제 바위골들이 수줍은듯 운무를 감싸

며 모습을 숨겨 산객의 애간장을 한껏 태우고 있다.

 

 

 

 

비선대가 가까워 오는지 이른 아침 미시령 위 너덜지대서 본 금강

산으로 가져가던 울산바위와 산객을 닮은 달마봉을 이곳에서 보니

더 아름답다. 운해는 달마봉을 절해고도(孤島)를 만들려고 작정을

했는지 그곳으로 빠르게 모두 달려간다.

 

건폭(비가오면 폭포로 변함)이라지만 무위산의 폭포처럼 금강

사이 멀리 암봉 가운데로 떨어지는 물줄기가 꿈에 본듯해 아름

답다. 해는 스스히 저물어 가고 산새들도 제 각각 집으로 돌아 갔는데 산객은 아직도 산중에서 이렇게 외로히 방황을 하고 있다. 

 

 

울산바위

 

 

멀리 암반 가운데로 낙차 긴 건폭의 물줄기가 아름답다.

 

 

 

비선대. 마치 신선과 선녀들이 유희를 하는듯하다 .

 

 

 

 

이 후 어둠속에 산객의 랜턴 불빛과 발자욱 그리고 계곡 물소리만 들려왔다.설악동으로 가는 길이 왜 그리도 먼지...

캄캄한 어둠속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사실 고통스러워 눈물이 날뻔

했다.식사시간을 빼고도 15시간여를 걸었으니 그럴수 밖에...

지금도 눈감으면 공룡을 침몰시키던 운해가 나를 고립 시킬듯

덤벼들어 외롭고 무섭다.

그리고 무거운 짐을지고 마등령을 향해 간다던 부자인듯한 사람들

이 오늘따라 걱정 스럽다.

노 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맥주로 목을 축인후 터덜터덜 설악

매표소에 도착하니 허허 밤 9시가 되었다.

이 시간에 저녁 요기나 할곳이 있을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