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면 설악은 바람이 난다.
남녀노소 어느 하나 가리지 않고 닥치는대로 품에 안고 잔다.
천하에 둘도 없는 바람쟁이다.
특유의 향을 풍기다가 끌려오지 않으면 기(氣) 쏟아 온갖 색(色)을 다 써가며 유혹을 한다.
어김없이 올 가을도 설악은 楓嶽이 되었다.
심야에 먼 길 달려온 산객 흥분하라는듯 여명과 함께 펼쳐놓은 만산 홍엽에 터진 입 다물기가 또 어렵다.
만추속으로!
아니 설악의 속살을 만지기 위해 화채봉을 간택했다.
쉽게 근접할수 없는 금인의 땅을 꼭 가야하는 이유를 알아내는건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산객들의 무한행복.
가을 설악은 산객들의 행복지수는 물론 쾌감지수 120%를 갖게한다.
노을빛을 닮은 설악. 그 중 화채봉과 천불동을 함께 가보자.
열정이 피었다.
그리고 그것은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차라리 마지막 몸부림이기에 더욱 발광 하는걸까?
처절히 태워 다시 희망을 노래하기 위함이리라.
풍악(설악)은 그렇게 타고 있었다.
바위도 나무도 그리고 풀잎 마져도...모두 그렇게 붉게 붉게 ...
하늘도 붉다.
붉은 바다에 낚은 목선 하나를 띄우고 수많은 섬들을 돌아 두발로 노를 저어 간다.
산마루금 산마루 산마루 톱날같은 암봉들이 여명을 받아 붉은빛에 몸서리치고 산객의 몸도 씻어도 탈색
되지않을 붉은색으로 염색되었다.
먼산바라기 설악은 먼곳이 더 정겨운 산이다.
긴 행렬 긴 기다림 권금성으로 가는 하늘 열차는 그렇게 사람들에게 참는게 무엇인지를 가르켜주었다.
빨리 빨리에 너무도 철저하게 길 들여진 한국인.
권금성으로 가는 하늘열차는 그것을 용인하지 않아 급한 대열에서 이탈한 산객은 그들의 조바심에
피식 웃었다. 드디어 열차는 권금성을 오른다. 해는 풍악을 힘차게 일으켜 세우고 발아래 설악동이 기지
개를 켜며 긴 하품을 토한다. 눈높이로 다가 앉은 울산바위 와 달마바위가 다소곳이 졸다 눈을떳다.
해야 솟아라.
설악아 !
풍악아 !
생명의 소리를 질러라.
일찌기 산객이 이토록 국빈 대접용 붉은 융단이 지천에 깔린길을 한번이라도 간적 이 있었던가?
이것은 전율이다.
온 몸이 붉은색으로 물들어 가면서 열이 오르고 포말처럼 땀방울이 이마를 적신다.
권금성을 넘어 집선봉을 지나가는 산객은 이 토록 심한 오열에 몸살끼를 느끼지만 발걸음은 노를 저어
가듯 미끄러진다. 이른 아침 이 길을 신선마져도 아직 지나가지 않았을터 기분이 참 좋다.
유혹이다.
원색을 별 좋아하지 않는 산객이지만 설악의 원색은 나를 휘감고 유혹의 손짓을 내밀어 지조없이 스르르
품에 무너져 안긴다. 인간에겐 생로병사가 있듯이 풍수지리에도 생왕휴수(生旺休囚)가 있다.
일정한 시기가 되면 지운이 끝나 입수(入囚)즉 지기(地氣)가 휴식상태가 된다는 글귀를 본적이 있지만
설악은 지기마져 늘 생생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니 풍악은 명당 중 명당이겠지...
산중 붉은 기운이 산객의 마음을 적시니 오늘 이곳 물밀듯이 밀려와 떠가는 인파들 모두에게 왕성한
설악의 기운이 담겨져 갈게다.
된비알 오름의 고통마져도 단풍의 화려함과 자연의 수려함에 저절로 감탄을 자아내고 세차게 불어오는
갈바람마져 원색의 향이 묻어나 상큼하다.
황금들녁이 우리네 마음을 위안하게 해주는 것이라면 설악의 단풍은 환희의 극치 즉 성취감을 무르익게
해 겨울의 길목이 두렵지 않도록 마음의 준비를 하게한다.
880봉의 고사목 너머 울산암의 위용. 8월 몽골 귀국후 바로 찾은 미시령 위 대간길 산릉이 황철봉으로
이어져 마루금은 산 산해의 수평선이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산줄기가 설악동을 보듬어 넉넉하고 따뜻해 보인다.
30여개의 암봉으로 이어진 바위 협곡 울산암이 산객을 쉼없이 따라 온다.
그곳 암장엔 암벽을 타는 사람들이 속속 모여 든다는 소리에 혹 바위가 몸살을 하는건 아닌지...
설악은 지난 여름 폭우로 엄청난 상채기를 당했다. 오색지구 흘림골 빙하에 뒤덮혀 산객을 맞았던 여심
폭포도 표백제로 씻어낸듯 양옆이 떨어져 나가고 대청봉 아래를 비롯 가야동계곡 죽음의 계곡도 마치
곡괭이로 일부러 파헤쳐 놓은듯 허연 상처가 칠선봉(1076.9m)을 암봉을 지날때 보여져 마음이 시리다.
울산암 뒤로 미시령 위 대간길도 보이고..
대청아래 산사태로 허연 속살을 드러낸 모습이 안스럽고 중청 소청 그리고 목타던 서북릉상 귀때귀청도
산객을 반기는듯 너른 자락을 펼쳐 품으로 들어오라 부른다.
첩첩 포개진 설악의 암릉은 과히 중국의 황산 북녁 금강산에 뒤지지 않는다.
특히 용아릉 공룡릉은 지구상 어디에 내어 놓아도 손색이 없을것이다 . 산 도 제자리에 있어야 그 품세가
더욱 빛난다. 따라서 설악은 동해의 푸른바다에 살짝 발을 담그니 그 기상 또한 겹겹 서너겹씩 포개져
오는 동해바다의 출렁거림을 그대로 받아 넌출거리는 산릉을 만든 걸죽한 우리의 산이다.
대청봉에서 공룡능선 나한봉을 따라 마등령길로 이어지는 대간길은 이제 나목의 행렬이 이어지리라.
수려한 암반 점입가경으로 펼쳐진 일망무제의 풍악 의 열두폭 병풍을 뒤로하고 산객은 추억 한장을
남기고 공룡의 갈기에 감탄한다. 금지의 길에서 서울과 여수에서 온 산악회 사람들을 만났다.
아직은 산을 만나는것이 서툰건지 아니면 원래 습성이 그런건지는 몰라도 도처에 금방 쏟아낸 배설물이
정말이지 낮설게 느껴져 졸지에 산객의 기분이 씁스레하다.
세상의 들끊는 욕망 그리고 번뇌를 잠시겠지만 물든 잎새에 접었다.
없어도 살아오면서 나름대로 곧게 살아 간다고 생각 하지만 언제나 낭패속에 사는것 같아 슬퍼다.
걱정한다고 해결 될 일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천성이 낙천은 못되니 이 또한 기구하지 않는가?
세월이 자꾸 쌓여 간다고 추억마져 포기 할수는 없겠지
육신이 점차 황폐해져 간다고 산을 그리는 마음마져 퇴색하지는 말자
산객은 늘 된비알길 오르다 숨이 턱에 차면 내밷는 푸념에 찬 일성을 질러 스스로를 달래본다.
아슬아슬한 만경대를 처음 만났다.
강풍이 불면 금방이라도 천길단애로 추락할것 같은 무서움이 느껴지는 좁은 암릉길에서 우측 아래를
내려다보니 실비단 같은 물줄기가 길게 늘어져 있다.
심산계곡 단풍 곱게 물든 계곡 사이로 은빛 물줄기는 승천하는 비룡의 몸짓이 되어 산객들을 또 하나의
경지에 들게하니 고행의 발걸음이 있어야 자연도 그에 상응하는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엄연한 이치를 또
체험하는 순간이다. 산길가는 객에게 폭포의 이름을 물었으나 몇번 오신분들도 그곳에 폭포가 있는줄을
몰랐다며 새로운걸 발견 한 것 처럼 오히려 신기해 하므로 산객이 아름다운 용이 만추에 승천하는 형상
으로 보여 미룡폭포라 작명한다. 사실 지도상의 칠선폭포가 맞을듯 ... 그기 누구 폭명 아는이 없소?
▲ 미룡폭포라 지어 올리지만 사실은 칠선폭포인듯 저렇게 장관인 폭포의 작명을 범부인 산객에게 까지
돌아올리는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 아닐까?
낭패였다.
급비알길 길도 아닌 길을 내려서다가 발길에 채인 돌이 거침없이 아래로 내달려 혹 아래에 하산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영락없는 대형사고로 이어질뻔해 머리끝이 선다.
벼랑끝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다행히 사람이 없다.
초행길이라 무심코 발자욱이 있어 내려 섰더니 마사토 비탈길에 발바닥을 땅에 붙이기 조차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러나 두려움 속에서도 희미한 산길에서 만나는 단풍 그것은 또 다른 색깔로 다가와 가슴
설레게 하고 천불동이 시작되는 양폭산장길은 미로처럼 아득해 이 길 계속 가다가 낭떠러지라도 만나게 된다면 우둔한 산객은 어이할꼬 ? 무서움에 잔뜩 긴장하며 한걸음 한걸음 아슬히 내려서니 바로 아래서
사람들 소리가 들려와 속세의 소리도 이럴때는 참 존귀한걸...
잠시후 옆길로 오르는 등산객을 만나 바로 아래가 양폭산장임을 알게되어 고른 안도의 숨이 새어나오고
기암 직립한 사이에 붉은꽃을 피운 천불동을 만났으니 내일쯤 행복했던 이야기 또 나눠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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