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불동.
이름마져 예사롭지 않아 가슴부터 설렌다.
하늘과 닿은 암봉 그리고 수려한 암반에 떨어지는 폭포. 풍악의 최고 단풍계곡을 말하라 하면 세인들은
서슴없이 천불동을 말한다. 파란 하늘로 거침없이 뿜어올리는 가을 성찬의 유희. 천불동 가을은 호사
스러운 몸짓으로 절정의 원색을 피우며 심심계곡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양폭산장을 내려서니 천당폭포가 가뭄으로 가느다란 물줄기를 내리고 있다.
바위틈새로 당단풍의 빨강과 떡갈나무 상수리나무의 노랑잎이 조화를 이뤄 꽃보다 더 아름답게 피었다.
만원이다. 산객이 걸어온 험준한 산길은 넉넉하다 못해 심심할 정도로 적막도 있었건만 이곳 천불동
계곡은 청바지에 구두를 신은 사람들 백바지에 운동화를 신은 행락객들 그리고 대청을 오르는 산객들이
일시에 몰려와 산길은 정체로 더디다 못해 정지되고 있다.
어느 조각가가 저 토록 아름다운 작품을 연출할까?
천불동은 곳곳에 바위 예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척박한 바위에 뿌리를 내려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나무들 그들이 피우는 노랑 빨강 의 이파리는 밤하늘의 별보다 더 빛나고 찬란하다.
은쟁반 위로 물방울이 도르르 구르듯 흘러가는 천불동 계류는 쳐다만 보아도 눈이시리다.
계곡의 바닥도 어김없이 원색으로 물이들어 손을 담그면 금방 물이 들것 같은 천불동. 올 가을을 놓치신
분들은 내년 10월 귀면암 천당폭포가 있는 천불동을 걸망 하나 메고 혼자 떠나라.
틀림없이 가을전설을 만들어 올 것이다.
붉다.
바알갛게 타고있다.
손을대면 데일것 같이 바위마져 타고있다.
초록의 저 이파리가 세월의 흐름에 저렇게 불꽃처럼 자신을 태우는가?
최선을 다해 올 곧게 살다 생을 마감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인간들에게 보여줘 우리네 삶도 저렇게 마지
막 한순간을 화려하면서도 고고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장식하라 교훈을 주는듯 하다.
천불동에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자주 보아야 한다.
푸른 하늘에서 떨어지는 아름다운 단풍 별들이 별똥처럼 떨어지는 광경을 놓치면 너무 억을하다.
적색.갈색.황색. 10월 천불동은 크레용이 없어도 캔버스에 주옥같은 그림을 그릴수 있다.
배고픔도 잊었다.
아니 먹지 않아도 빈 속이 저절로 채워져가는 느낌이다.
누군가는 2월 서리꽃보다 눈속의 매화보다 천불동 단풍이 아름답다 노래했다.
산객은 눈속의 꽃 매화 그 고고함을 매도하는 소리라며 미친짓이라 소리친걸 후회했다.
그렇다.
나무가지 끝으로 힘을 모아 마지막 기를 뿜어 올려 자신을 태우는 단풍꽃에 과연 매료되지 않을자
그 누구일까? 천하절색 양귀비도 고고한 절색 황진이도 천불동 단풍에는 저절로 고개를 숙일게다.
유난히 가을 가뭄이 심해 예년보다 설악 단풍은 그 빛이 곱지 않다고 전한다.
그러나 가뭄을 은근히 이겨낸 나무들의 색깔은 유리보다 더 투명하고 밝게 빛을낸후 그리고 땅으로
떨어져 자신을 꽃보다 더 아름답게 피운 뿌리를 감싸 안으며 내년 봄날 다시 초록의 이파리를 피우며
희망을 노래한다. 그래서 단풍은 곧 희망으로 가는 길이다.
병풍교 철다리 더디게 노를젓던 두 다리는 정지 되었다.
밀려오고 또 떠 밀려가고 10월의 천불동은 사실 단풍나무보다 사람이 더 많다.
계곡위를 올려다 본다.
심산유곡은 산객과 멀어진다.
불현듯 외롭다는 생각이 드는것은 번뇌 가득찬 속세와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계곡을 올라오는 사람이 부럽다.
산객은 속세와 가까워져 오지만 이들은 속세와 점점 멀어져 가니까?
속세와 가까워 지면서 올려다보는 천불동의 모습은 더 아름답다.
미련이 남아 있음일까? 난생 처음 만나는 귀면암의 자태 그리고 천년의 세월을 살아온 암송의 외로움.
푸른빛 속에서 발광하는 단풍의 품세는 눈이 부시는데 무엇이 그렇게 사무치도록 그리움이 많은걸까 ?
하늘을 향한 귀면암의 발돋움이 참으로 애처로워 산객의 발걸음이 철계단을 오르는 무게만큼 무겁다.
落日照秋 山千巖同一色(낙일조추 산천암동일색)
떨어지는 해가 가을산에 비추니 일천바위가 모두 한가지 빛이로다.
고시 한구절과 너무도 흡사한 설악 천불동 가을.
말로서 표현을 더 할수 없는 안타까움에 산객의 무지가 참으로 한탄스럽다.
이럴땐 과감히 붓도 꺾어야 하고 가을산을 만나려 가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오련폭포의 오묘함과 비선대 와선대의 돌병풍. 근경.중경.원경이 보여주는 열두폭 그림은 단연
천불동이니 두 발 노 저을수 있다면 내년에 다시 이곳을 와 보리라
저녁 노을빛을 닮은 그대 그때까지 안녕
손 뻗으면 금방 닿을것 같은 금강굴 세존봉.나한봉.천화대가 있는 범봉 꽃피듯 불타는 화채능 잠시라도
눈감으면 활동사진 처럼 뚜렷이 클로즈업 된다.
지금 이 시각에도 와선대 비선대를 지나 귀면암의 단풍에 사람들은 모두 넋을 놓고 있으리라.
10시간의 산해속 항해는 끝이났다.
산객은 신흥사 좌불앞에서 설악이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닿을 내린다.
권금성 하늘로 가는 열차는 부푼 가슴들을 안고 힘차게 이륙하며 행복한 하루를 실어 나르고 시공을
초월한 설악(풍악)의 경이로움은 비단 만산홍엽만이 아니라 억만년을 또 억만년을 버티고 선 바위들도
함께 있기 때문이리라. 가을은 시방 깊어간다.
찬서리 내려 기러기 떼 지어 날면 우수수 홍엽은 힘없이 지겠지 ...그리고 그리움으로 또 올것이다.
2006년 10월 14일 설악 화채능 천불동에서 산객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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