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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 산길에서

땅 끄트머리 바다와 사는 두륜산

 

휴일날 단 하루만이라도 텔레비젼을 꺼자.

그리고 주먹밥 하나넣은 걸망을 메고 남도의 땅끝을 향해 달려가자. 

차창밖으론 회색빛 겨울이 HD 영상으로 펼쳐져 스산함도 묻어 나지만 간간히 여유로운 볕이 내리면

겨울은 영 추운것만은 아니다.

가을걷이가 끝난 빈 들엔 촘촘히 비닐하우스가 들어서고 살얼음 낀 강 복판에서 솟아나는 물안개를

가르며 철새떼가 비상하는 고화질 영상의 장관을 길을 나서지 않고서는 볼수가 없다.

이 땅 끄트머리 해남.

호수같은 다도해의 겨울바다는 올망졸망한 섬들을 품에안고 고단한 일상을 재우듯 누워있다.

2006.12. 3. 필자는 소백산맥의 남단에 위치하여 땅끝 잔잔한 바다에 긴 자락을 적시는 두륜산 위봉을

만나기 위해 완도로 가는 813번 도로를 달려 쇠노재에 도착하니 우측 투구봉과 위봉이 장엄하다.

    

 

그리고 대둔산자락 뒤로 달마산이 마지막 육지임을 입증하듯 육중한 암릉에 바위 전시장을 만든다.

남도에 자리한 산들도 명산의 반열에 이름을 당당히 올린 걸죽한 산들이 즐비하다.

이곳 두륜산을 오기전만 해도 제암산과 일림산이 하늘금을 그어 천관산을 불러 일으켜 세우고 다산

의 다향이 오롯이 묻어나는 바위산 덕룡산줄기는 남으로 내달려 톱니처럼 날을세운 주작산과 새악시

연지찍은 볼처럼 봄날 분홍빛 온 산 물들이는 흑석산도 손을들게 한다.

그리고 8봉우리가 아닌 9봉우리 팔영산도 그 이름값을 툭툭히 하며 하늘과 키를재고 있다.  

    

 

▲ 투구봉

 

 

저기 저 위봉을 올라서면 또 무엇이 날 기다릴까?

4번째 두륜산 산행.

예전과는 달리 궁금증이 조급하게 발걸음을 재촉하지만 급사면에다 암릉길이라 마음만 바쁘지 전진하는

속도는 느리다. 바람이 매섭게 귓전을 몰아치지만 등뒤로 펼쳐진 완도 앞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하다. 

남국의 아름다운 휴양지의 섬 같은 작은섬이 그림처럼 한가로히 떠 있다.

금방이라도 바닷길이 열려 솔 그늘 드려진 긴 백사장으로 나를 부를것 같은 저 섬엔 지난 여름 사람들의

흔적이 있었을까?  이곳에 저런곳이 있었다니.....

 

 

 

▲ 금빛 백사장을 거느린 바닷길이 열릴것 같은 직은섬이 이국의 정취를 부른다.

 

 

위봉은 두륜산 전체를 볼수있는 조망처였다.

약간의 위험이 따르지만 오소재나 대흥사 입구에서 노승봉.가련봉.두륜봉을 오르는것 과는 판이하게

다른 분위기의 산길이다. 특히 위봉을 오르기전 바위 슬랩지대는 암장을 오르는 기분을 자아내고

520봉에서 두륜봉밑 구름다리를 가기전 2곳의 직벽 바위타기는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스릴도 있다.

"그래 산은 이래야 산내음이 물씬 나 술에 취한듯 한껏 젖었다 가지"

바다 건너 완도 상황봉이 내 등짝을 만일재로 힘껏 밀며 내밷는다.  

투구봉의 조각같은 작은 바위 위로 노송이 푸른 솔가지를 내밀며 바다로 노저어 갈 태세다. 

두륜봉과 가련봉이 만일재를 사이에 두고 유유자적(悠悠自適)허송세월을 보내니 두륜산도 연꽃닮은

불심 가득한 산으로 속인의 마음 추스려 내려 보낸다. 

 

▲ 투구봉. 얹혀있는 바위들이 위태하게 보일 정도로 아슬아슬하다. 

 

 

앞서가는 사람들의 아슬아슬한 암릉타기가 날다람쥐를 닮았다.

수석처럼 서 있는 바위들이 영락없는 석화(石花)다.

아치형 구름다리를 일부러 지나친다.

특이한 바위다리가 사람 발목을 잡고 놔두지를 않아 곁 눈길만 한번 주고 재빨리 돌맹이 울퉁불퉁 솟은

비탈길을 달려 만일재에 내려서니 바람이 산허리를 돌며 고흥 바다까지 달려 나간다.

간단하게 중식을 들고 다향에 젖고 싶은 마음에 초의대선사가 차(茶)를 중흥시킨 일지암을 들리고자

하산길을 서두른다. 겨울속 대찰 "대흥사"도 볼겸하여...

    

 

 

 

 

시(詩)서(書)화(畵) 삼절로 茶를 중흥시킨 초의대선사(1786-1866)가 만년(40년)동안 기거한 일지암

비알길을 올라서니 풍상에 씻긴 흔적이 살림채 곳곳에 남아 고고함을 더해준다.

조선후기 실학의 거두요 당대의 명사 다산 정약용. 추사체 및 금석화로 유명한 완당 김정희. 정조 임금

의 사위인 홍현주.조선 최고의 시인 자하 '신위"등 많은 석학등과 茶를 매개체로 실학과 예술을 논하며

교파를 초월한 방외청교를 맺었던 다문화의 성지 "일지암" 암자 사방에 저절로 자라는 차나무에 하얀

차꽃이 오늘 연꽃으로 보이는것은 왜 일까? 

고요하다 못해 적막한 암자에 풍경소리 마져 숨을 죽이고 한겨울을 날 장작더미가 세속으로 부터 몰고

올 설한풍을 산속에서 보는것 같아 안스럽다. 

 

 

 

뒤 돌아보니 노승봉 가련봉 두륜봉이 하늘에 닿았다.

올때마다 중창으로 부산하던 대흥사는 해거름이 되어도 사람들이 머물고 있다.

일주문을 내려선지 얼마후 속세로 다가가는 긴 포장길에 휠체어 부부를 만났다.

다리가 불편한 부인의 투정을 사랑으로 받아 겨울이 시작되는 산사를 찾아온 겨울 여행객. 

세상 아름답고 행복함을 여기 이 사람들에게 비할수 있을까?

이들을 앞지르는 필자는 미안하여 뒤돌아 볼수가 없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추울건지 옷 안으로 파고드는 남도의 바람도 매우 차다.

 

 

가는길

남해고속도 순천 나들목 2번국도 강진 813번 해남.완도방향 쇠노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