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동피랑엔 꿈이 있을까? 덕지덕지 달라붙은 저 지랄같은 "가난"이 늘 자리하는데도 꿈이 있을까? 필자는 통영의 동쪽벼랑 마을 "동피랑"을 오르면서 지질이도 가난했던 우리네 60-70년대를 기억한다. 한뼘 마당도 없이 벽과 벽 지붕과 지붕이 다닥다닥 붙어 옆집 숨소리까지 다 들리는 달동네서 40평의 아파트도 적다며 큰평수를 찾아가는 사람들의 여유와 호식이 이곳에 남아 있을까? 낚은 담벼락에 꿈을 그려 놓았다고해서 그 벽화가 개발의 삽질을 막았다고해 그 속의 삶의 질이 나아지고 있을까? 가난해보지 않은 사람은 가난을 모른다. 삶의 무게와도 같은 언덕배기를 오르면서 가쁜 숨소리를 내어 보지 않은 사람은 "가난"의 고통을 정말 알까?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가난은 조금 불편한것 뿐이라고..." 그러나 전기세가 아까워 선풍기도 켜지 못하고 손바닥만한 봉창을 열어놓고 부채질을 하시는 노인분에게 가난이 조금 불편한거냐고 물어보라. 가진자들의 말장난이라고 대뜸 말하지 않겠는가?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동피랑을 동화속 마을로 착각하고 있지는 않는지... 필자가 통영과 가까운 거리에 살면서 그리고 한달에 한 두번쯤은 통영을 가면서도 여태껏 "동피랑"을 가지 않았던 이유는 그 속의 삶들을 앵글에 담을 자신이 없어서였다. 그런데 왜 이제 그곳에 갔느냐고 물어올 것이다. 미화된 동피랑의 삶들이 혹 온갖 미사구로 차려진 시와 노래 그리고 동화가 되지는 않았을까 해서다.
필자가 언덕배기를 땀 뻘뻘 흘리며 올라서자 거동이 불편하신 우리 엄니 또래의 할머니를 만났다. 여름이라 더워 방문을 다 열어 놓아야 겨우 숨통이 트일텐데... 선부같은 사람들이 사진기를 들고 왔다 갔다 하는 바람에 웃통도 한번 벗지를 못해 갑갑하다는 말에 필자가 영 무안하다.
필자도 보존할 가치가 있는것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보존"해야 한다는데 이견이 없다. 허지만 아련한 추억과 향수를 불러주는 우리 잃어버린 삶의 한부분을 기억해 내기위해 그 속의 삶들을 참을수 없는 고통을 감내하며 보존할려고 한다면 이것도 어불성설은 아닌지... 담벼락에 어께가 닿을듯한 좁은 비알길을 내려서는 필자의 마음이 동피랑의 현실과 같다.
강구안에서 쳐다본 동피랑. 저곳엔 잡초처럼 끈질긴 삶, 고단한 삶, 희망의 끈을 힘차게 쥔 삶들이 공존하겠지. 이 소녀는 동피랑에서 무얼 담고 갈까? 고단한 삶이지만 가족들의 웃음이 있어 희망이다.
위태하게 선 고목 고단한 삶의 모습이 아닐까?
길손들 잠시 쉬어 가려는듯 언덕위 골목 평상이 정겹다. 동피랑 언덕배기에서 바라본 강구안. 동피랑 사람들의 질펀한 삶의 터가 이곳이 아닐까? 저 처자들은 동피랑을 어떻게 생각할까?
성경이 아라가 사는집일까?
아이가 벽화를 열심히 카메라에 담는다. 해맑은 저 아이의 마음속에 지금 동피랑은 어떤 모습으로 채워질까?
언젠가는 이 아이의 맑은 눈동자와 미소처럼 동피랑에 꿈과 희망이 진짜 있기를 소원해 본다. 그리고 최소한 동피랑이 단순히 우리가 잃어버린 옛시절의 추억들을 기억하기 위해 무수히 셔트를 눌리는 관광지가 아니기를 빌며... |
'☞ 現場 속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농심이 뿔났다 (0) | 2009.10.09 |
---|---|
함께 그리는 고향 스케치 (0) | 2009.09.25 |
1592년 임진년의 한산도 바다를 다시 보다. (0) | 2009.08.16 |
달이 해를 야금야금 (0) | 2009.07.22 |
울 아버지 어머니가 부르던 恨 의 소리 농요 (0) | 2009.06.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