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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現場 속으로

모내기

 

 

                 60-70년대 참 어려웠던 시절

             삶의 바닥 같았던 너무도 고단한 춘궁기를 넘기신 어머니는  

             온 식구들의 생명줄인 5마지기 논에 모를 심기위해 열몇번을 이웃집 모내기를 가신다.

             물론 아버지도 못짐꾼으로 서너집을 가시는건 기본이였다. 

             품삯(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품앗이가 당시 유일한 가계의 지출을 막는 수단이지만

             그것보다는 이웃간의 풋풋한 情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늘을 관통하는 비명같았던 가난이 줄창 계속되어도 욕심 부리지 않았던 우리네 農心

        손해보는 것 들이 눈에 확연히 보이지만 농자는 천하지 대본이라는 말에

        위안을 삼고 모진것들도 참고 살았다.

        이후 숱한 세월이 흘러 디지털시대가 와도 여전히 우리 농촌의 경제와 삶의 질은

        크게 향상된것이 없어 안타깝다. 

        선거때만 되면 끊임없이 나불대는 지역 정치꾼들의 공약은 지키지 않은것이 상회하고

        이들이 농심을 더 멍들게 하는것 같아 분통이 터지지만 시간이 가면 쉽게 

        잊어버리는 냄비 근성에 내년에도 그 다음해도 또 농심을 가지고 놀 것이 뻔하다. 

    

 

          논배미가 점차 모포기로 채워져 가면 소박한 정성이 담긴 중참 행렬이 논두렁을 따라온다.

        만삭의 아낙은 머잖아 다가올 누런 들녁을 생각하며 고단함도 즐거웠던...

        이 땅 힘센넘들의 탐욕이 하늘에 닿고 있지만

        지금 고향은 모내기가 한창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