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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사산행

운흥사 의 봄

운흥사 가는길은 고즈녁하다

굽돌아 산속으로 들어가면 속세를 벗어나는 여유에 산새소리마져 낭랑하다

바람소리마져 부드러워 보이는듯 보이지않게 천년세월을 그렇게 지탱하며 봄 닿은 운흥사는 고요하게 흘러가고 있다.

 

 

모진 세월을 지탱한 일주문 (뒷면 不二門)의 기둥은 새로 축조 되었다

막 피기 시작한 벗꽃이 흔적조차 아득한 수년전의 운흥사 초행길을 달래듯 일주문을 호위하듯해 지독히 간절한 소망을 향한 

가풀길에 선 길손을 위안해 준다.

 

 

대웅전은 오늘도 그 자리에서 제 몸을 간수하며 와룡산 향로봉을 품고 번민하는 중생들을 온전히 안으며 어둠속에서

빛을 바닥까지 주었으리라 이제 막 초록으로 변해가는 세상이 속세의 번잡함을 치유한다면 길섶 민들레의 방긋함이

더 미소를 짓게하지 않을까? 

문득 왜구와 맞서 백척간두에 선 조선을 지키려 승병 6천여명을 양성한 호국의 절이기에 작금의 사태가 더 더욱 암흑

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드는것은 기우일까?

 

 

늘 느끼는것이지만 현존하는 사찰 대부분의 창건은 의상대사가 압도적이다.

저 많은 절을 얼마나 부지런하면 다 이룰수 있을까 

과연 사실일까 하는 의문이 늘상 드는게 사실 이곳 운흥사도 통일신라 문무왕16년(676년)에 의상이 창건하여 임진왜란때

사명(유정)이 승병을 이끌고 싸웠다고 전해지며 이때 대웅전이 소실되어 영조7년인(1731년)에 다시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운흥사는 왜구가 세번이나 해로로 남획 반출하려다 실패한 보물제1317호인 괘불이 단연 압권

 

 

     

필자가 제일 좋아하는 원형의 장독대가 있던 터가 휑하게 비었다.

윗쪽으로 옮겨 놓은듯 팻말이 가르킨다.

제 모양은 사라졌고 그림자만 머리속을 돈다

마음은 흔들거리지만 새롭게 터 잡은 곳에 풀꽃들이 피지만 탑이 무너진듯 마음이 무겁다.

시간이 이렇게 옮겨놓고 말았다니...

 

 

규모도 훨씬 작아지고 독안도 궁금해지고

목마르듯 입술이 타고 골짜기 저 너머까지 서운한 감정이 물결처럼 번져간다

돌아갈 길이 없어진듯 

산골짜기에서 조난을 당한듯한 심정으로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을을 피하듯 서둘려 집으로 갈 채비를한다.

그림자 하나를 두고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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