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통영간 고속도로 공사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는 고향 들녘도 무던히 가을이 내리쬐어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하얀 속내를 드러낸 논둑위 억새는 파란 하늘과 노니는 뭉개구름에 눈을 맞추며 가을 그 향기로운 춤사위를 펼쳐놓는다.
지난 여름 영천교와 홍정교를 집어 삼킬듯 노도처럼 구비치며 무서운 소리로 급하게 달리던 영천강도 새 조약돌을 융단처럼 가지런히 펼쳐놓고 그
위로 옥빛물살을 조용히 내려 보내는 이 여여로움과 평화로움은 이맘때가 절정이다. 모든이들이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게고 기억 저편에
자리한
추억 한옹큼 꺼내 회상에 잠겨 보고싶은 계절. 그래서 9월엔 이별이 더 슬픈것일까?
정말 지척에 호젓한 산길이 있다는 소리는 간간히 들었지만 발품팔기가 싫었던지 아니면 아직은 족적 덜함이 외롭게 느낀 탓인지는 몰라도 선유산은 쉬이 갈수가 없었다.
선유산.
변방의 나즈막한 이 야산이 이렇게 고급스런 이름을 가지고 있다니 의아스러워 선유산을 찾기로 하고 9. 23. 고성 영오 면 소재지가 있는 낙안에 도착했다.
사거리에서 직진하여 300여미터쯤 가면 도로 우측에 영오산악회 영천산악회가 세운 2미터쯤 되는 커다란 선유산 표지석이 초입을 안내한다.
참고로 낙안사거리에서 우회전 하면 천년고찰 옥천사가 있는 연화산으로 간다. 잔돌이 깔린 진입로를 따라가면 세면장 겸 간단한 간이샤워장 시설과 화장실이 설치된 주차장이다. 노송이 낮선 산객을 편안하게 맞아 산행들머리 부터 기분이 매우좋다
봉우리의 이름부터 정겹다.
들평봉.양호봉.소재봉.상여봉.서나베이재.어느새 나는 중국의 어느 산봉우리를 오른다.
호젓한 산길이다. 오염되지 않은 고향 뒷산 오솔길을 오르듯 길 따라가니 알밤이 길가에 지천으로 떨어져 영락없는 우리집 밤나무산 이다.
배나무밭을 지날때 갓끈을 고쳐메지 말라 했던가?
아우성치는 농심이 생각나서가 아니라 밤값 하락해 거름값도 못한다는 친구의 볼멘소리가
귓전을 때려서가 아니라 내가 촌놈이고 흙과 살아온 세월 때문에 필자는 발밑에 밟히는 알밤을 외면하며 간다. 그때다 멀리서 필자를 유심히 보고
있었는지 밤을 주워담던 촌노께서 아저씨 밤한톨 잡숫고 가소 한다. 고맙습니다 하고 황급히 걸음을 재촉해 가지만 왠지 뒷통수가 가렵다.
내가 땀흘리며 가는 이 길도 내 자신이 생각해도 평생을 흙만 파오신 저분에게는 고급스럽고 호사스러운게 아닌가? 제법 너른 들평봉에 오르니 연화산으로 짐작되는 산줄기가 조망되고 기러기가 살포시 내려앉는듯한 낙안벌이 가을색을 드리운체 고요하게 보인다.
연화산 줄기도 조망되고
이곳은 새소리도 청량하다.
부는 바람과 들꽃 그리고 간간히 서 있는 적송이 더욱 산길을 호젓하게 해주고 쉬엄쉬엄 벗하며 가는 두사람을 만나 앞질러가니 필자의 보행속도가 부러운지 저렇게 가야하는데...한다.
세월감을 한탄하는 소리이리라. 사실은 필자도 산길 부드럽게 달리는 사람을 보면 부럽기 그지없다. 좀더 일찍 산과 벗 할걸하는 후회가 든다. 무심코 길을 막아서는 바위를 만나 올라보니 상여봉 상여바위다. 이곳에서의 조망은 과히 일품이다.
발아래 펼쳐지는 초가을 풍광은 넉넉하다 못해 기쁨이고 온갖 산과들이 만들어 내는 그림은 꿈길같은 성찬으로 펼쳐진다. 바람이 시야를 더욱 가볍게하고 정상은 성채처럼 끄트머리에 자리하고 있다.
상여바위에서 바라 본 선유산 정상.
바위를 내려서니 다시 길은 고요하고 솔향은 여인의 향기보다 더 진하다.
서나베이 삼거리 이정표를 보니 이국의 산명이 아닌가? 이름을 마땅히 물어볼곳이 없어 지금도 궁금해 시간내어 산 밑 마을에 들려 물어볼량인데
하여간 그쪽 방면으로 가면 금강굴.장군바위.등이 있다고 적혀있다. (필자가 금강굴에 가보니 도를 닦은터인지 사람이 기거한 흔적이 있고 굴엔 물이
가득차 있다. 생활쓰레기가 둥둥 떠다니고...)삼거리에서 정상까지 는 제법 난이도 있는 비탈길이다. 사람들이 세운 입석이 간간히 좌우에 있고
나무계단을 오를때는 땀이 온몸을
적셔 기분이 참 좋다. 정상석 밑 청초하게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군락이 80여분(보통 100여분 소요)을
쉬지않고 달려온 필자를 달래더니 잘 다듬어진 작은 대리석에 새겨진 선유산 정상 표지석 옆으로 인근 산악회원들이 세운 간이 나무 의자며 돌의자가
자연스럽게 사람을 쉬게해 풋풋한
사람의 정도 느낀다. 선유산은 많은이들의 수고로움으로 벌목이 되어 정상 조망이 선명하다.
탐티재 맞은편 송곳처럼 솟은 산줄기가 낙남정맥길이다.
발산재서 깃대봉을 지나오는 낙남정맥의 산줄기는 지리를 향해 갈수록 그 기세가
대단하다는걸 여기서 느낄수가 있다. 20여분 사방을 조망한 필자는 인근 월아산 보다 산행시간도 약간 길어 주변 산꾼들에게
살짝 권하고 싶다.
아직은 때가 덜탄 고향 뒷산같은 선유산 시간이 지날수록 참 기분좋은 산 이다.
2005. 9. 23. 기산들
2004년에 종주한 낙남정맥 줄기가 감회에 젖게하고..
비단결처럼 부드러운 선유산 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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