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7번 국도를 따라 가는날은 신바람이 난다.
그것도 동행하는 길잡이가 곁에 있다면 더 없이...
나는 어느길이든 다 좋아하지만 유독 7번국도는 살아있는.. 힘있는.. 아직도
작은 희망들이 솟아있는 길로 여겨져 더욱 흥분되게 달려간다.
오늘은 혼자 관동의 중심(순전히 필자 생각임) 강릉을 출발해 7번국도를 따라
경주를 향해 갈것이다.
미리 정해진 곳을 가는게 아니라 여유롭게 발길 닿는대로 무작정 갈것이다.
물론 몇몇 장소를 주문을 받고 가지만 어쩌면 혼자서는 그곳엔 안갈수도 있을
것이다. 자!그럼 푸르디 푸른 동해바다를 끼고 내려 가보자.
길을 떠난다는것.
그것은 아이나 어른 모두에게 설레임 그 자체다.
추억도 기억할일도 구름처럼 피는 그리움도 모두 다 길을 떠나야 이루어진다.
진한 추억이 생길 7번 국도변의 볼거리는 어떤때는 전설과 우화로 때론 신명
나는 한판 푸닥거리와 춤판이 되어 길손에게 영화처럼 기대감으로 다가온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당당히 등록된 단오제의 전통이 오롯히 전해오는
아름다운 강릉을 출발하여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흙 한줌에도 천년 신라의
혼이 묻어나는 고도 경주까지만 내려가도 참 행복한 여행이 된다.
동해바다의 파도소리와 너울이 투숙한 방까지 밀려와 멀미를 한건지 또 밤새
뒤척이다 새벽6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몸은 피곤한것 같아도 기분은 상쾌하다.
올때마다 찾아가는 시외버스 터미널앞 해장국집은 오늘도 예외없이 손님들로
북적이고 해장술에 취기가 있어 보이는 앞 좌석의 손님은 다시 소주 한병을
주문하는걸 보고 절로 웃음이 난다.
산객도 술을 사랑해 어떤때는 두주불사가 될때도 있지만 지금까지 단 한번도
해장술을 마셔본적이 없어 저런 광경을 보면 아직 나는 진정한 술꾼이 못되고
산꾼이 아직 덜된 산객처럼 주객쯤 될까?
시청앞에서 7번 국도로 진입하여 안인 삼거리에서 서행하면서 얼마전 안보전
시관과 정동진을 갈때 지나쳤던 등명 낙가사 생각이 떠올라 사월초파일도 목전
이라 첫번째 발길지로 정하고 넓다란 주차장에 도착하니 연인과 부부 그리고
가족들이 사월초파일 등(燈)을 사려온건지 이른 아침의 적막감을 해소 시켜줘
너무 기분이 좋다. 철분이 많은 감로수 약수터엔 불이붙듯 연산홍이 만개해
호사스러워 어제 긴 산길 단아한 모습으로 부끄럽게 피어 산객 발걸음 더디게
하던 철쭉과 대비된다. 낙가사 5층 석탑만 옛것인 것 같고 법당과 요사채는
근래에 중수한 현대식 건물들로 고색(故色)은 어느곳에도 찾을수가 없어 답답
하다. 산문을 나오니 계곡에 다람쥐가 겁없이 빤히 산객을 쳐다봐 어찌나 반갑
고 신기한지... 사진한장을 다 찍을때 까지 포즈를 취해줘 문득 사람 과 친한
설악산의 다람쥐 생각이 난다.
▲ 등 뒤의 남근을 껴안더니 쓰다듬고 내려서는 아낙들.
사실 정동진이 관광지로 급부상 하게 된 원인은 모 텔런트의 이름이 붙은
정동진역 플랫폼에 있는 소나무 때문이라는 길잡이님의 전화를 받고 정동진
역사(驛舍)를 찾아갔더니 플랫폼에 관람료를 내야만 들어갈수 있다는 소리에
고급스런 카메라를 멘 젊은이들이 화를내며 뒤돌아서 산객도 슬그머니 역 마당
으로 나와 모래시계 공원으로 갔다.
이제는 그때의 열기가 조금은 식을것 같은데도 아직 드라마속의 주인공을 꿈꾸
는지 젊은연인들은 마주보며 밀어를 나누고 나처럼 중늙은이 들도 사진찍기와
늦은 추억을 만들기에 정말 바쁘다.
겹겹으로 백사장을 간지르는 파도에 신바람이 나는것은 역시 연인들.
지금 그들은 목하 열애중이다. 솟대옆을 지나는 그들의 바램은 동일할까?
바다가 유일한 삶의 터 인 갯가 사람들의 이야기는 전설이다.
산객은 내려가던 발걸음을 어느 작은 갯가로 향했다.
동해안에서 유일하게 남근(男根)을 숭배하는 민속이 전해오는 마을.
이 시대를 살면서 사는것과 부양 그 생명줄인 직장이 백척간두 풍전등화 같은
위기 상황이 지속되면 고질적 스트레스로 저절로 고개가 수그러져 어둠속에서
도 울어야하는 오늘날 고개숙인 주눅든 대다수의 남자들.
그 남자의 상징을 숭배한다는 마을이 있다는것은 나그네 발걸음을 끌기에 충분
했다. 백사장과 송림 그리고 흰파도만 늘어져 있는 동해안중 장호항은 제법
갯가의 모양새를 갖추어 어업체험지로 사람들 발길이 있다.
그 장호항을 지나 구부러진길을 돌고돌아 가면 갈남리 신남항 삼거리 마을입구
에 해신당공원 이라는 아치형 간판이 있는곳이 이 마을 들머리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코끝에 스쳐오는 비릿한 내음 돌미역이 판장에서 지천
으로 말려지고 있다.
전형적인 우리의 어촌마을.
그 마을 끄트머리에 바다신을 모신 해신당이 있고 주변에 그림과 같은 익살과
해학 남자의 힘을 상징하는 남근목들이 직립해 있는 남근공원이 있다.
해신당의 유래는 여는 구전처럼 처녀 총각이 화두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남근이 있었다.
아주 너무나 아주 먼 옛날에 심한 봄 가뭄으로 산천은 헐벗고 백성들이 굶기를
밥먹듯 하던 시절에 이곳 어촌 신남도 예외가 아니어서 봄철 넘기기가 어려운
처지였을때 이 마을에 사는 처녀가 장래를 약속한 이웃 총각에게 바다 나물을
뜯어려 돌섬(마을 북동쪽 약 1km지점의 작은섬)에 갈려고 하니 배를 태워달라
고 해 돌섬에 내려 놓으면서 한낮이 되면 데리려 오겠다 약속한후 뭍으로 돌아
와 밭일에 열중하였고 처녀 역시 바다 나물 뜯기를 열심히 하다보니 어느새
해가 중천이다. 그런데 갑자기 바다에 높은 파도가 일기 시작하면서 밤새도록
배를 띄울수 없던 총각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뜬눈으로 밤을 지샌후 새벽에야
풍랑이 멎어 배를타고 돌섬으로 가보니 이미 처녀의 모습은 어느곳에도 볼수
없었다. 처녀가 죽은뒤 부터 이곳 신남마을은 고기가 집히지 않을뿐 아니라
바다에 나간 마을 어부들이 풍랑을 만나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사고가 빈번
해지자 온 마을에 정혼한 총각과 살기위해 애쓰다 죽은 처녀의 원혼 때문이라
는 소문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던중 어느날 총각의 꿈에 이 처녀가 산발(머리
풀어헤침)을 하고 나타나 내 원혼을 달래어 달라는 하소연을 듣고 다음날 당장
향나무로 남근을 깎아 신수(神樹)에 매달아 놓고 제사를 올리자 그 후부터는
신기하게도 고기도 잘잡혀 이 이야기를 들은 마을사람들이 공동으로 남근을
깎아 해신당 신수에 매달고 치성을 올리게 되었으며 살려고 애를쓰다 죽은
처녀가 몸부림친 그 바위를 애바위라 부르게 되었단다.
지금도 매년 2차례(음력 정원대보름. 10월첫 午日)에 해신당에 제사를 지내고
있단다. 해신당안에는 나무로 깎은 수십개의 남근이 벽에 걸려있다.
남근은 처녀의 원혼도 달래고 집어 삼킬듯한 산같은 파도도 잠재웠다.
이곳 성 민속공원에 유명 작가들이 세운 형형의 남근과 여성을 묘사한것은
해학이다. 관능의 상징물이 아니라 힘의 원천이고 통솔의 중심이다.
가장 낙천적일때 에너지가 솟아나듯이 고된 일상에 지쳐가는 이 시대의 남성들
의 바램이 이곳에 꿋꿋히 서 있다. 일단의 무리들이 사진을 열심히 찍고있는
산객옆을 내려가면서 묘한 웃음과 말을 흘리는게 모두 아낙네들이다.
예전에 갇혀 있어야 하는 성(性)으로 치부되어 있을때는 부끄러움과 죄의식이
앞서 손가락 사이로도 감히 쳐다 볼수 없었을텐데 안고 쓰다듬고 유유자작
내려간다. 이럴때 젊은이들 유행어로 허접인가?
만삭의 ...
▲ 사진 우측이 대장군이고 좌측 나무에 살짝 가려진게 여장군이다.
▲ 예상보다 제법 많은 관광객이 붐빈다. 어!이 팀들은 절반이네.
제일 많이 여자분들이 안고 만지고 가는 남근목.
사람이나 조형물이나 서 있을곳에 있어야 대접을 받는것 같다.
이 조형물은 남.녀 혼합형이라 그런지 여자분들은 대부분 외면
작가의 이름과 제작년도 부제가 붙어있다. 그리움 혹은 기다림 같은것...
오늘 이곳을 다녀간 대다수의 아낙들은 일상에 지쳐 주눅든 내 남자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가장 값진 견학을 하고 돌아갔을것 같다.
이제부터 서두르지 않을것이고 구박하며 마음도 상하지 않게 할 것이며 "사람
들 사는게 다 그런거고 당신이 못벌면 내가 벌어도 된다"며 용기도 줄것이다.
밥보다 더 좋은 보약은 세상 천지에 없다며 구수한 재래식 고향 된장에 풋고추
와 호박을 팍팍 썰어넣어 찌개를 끊이고 다시 가족들이 저녁식탁에 모여들게
할 것이다. 자연스럽게 가장의 위신이 되살아나고 저 밑바닥에 숨어있던 강한
리더쉽도 몽개몽개 피어날것이다.
이 땅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남자들이여 가슴을 펴자 !
그리고 줄창 산으로 가라 비뇨기과 의사분들도 약물이 아니라 시간만 나면
산으로 간다. 스트레스만 없다면 산은 최고의 강장제다. 부작용 하나 없는 천연
강장제다. 산객은 주변 지인들에게 이 참에 부인들 계(契)를 만들라고
권할참이다. 낙찰계 먹자계가 아닌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갈남리 301번지
신남항에 소재한 해신당이 있는 남근공원을 견학할 계를...
그곳에서 당신들의 남자를 가장 위대한 남자로 일으켜 세우기를 배우고 오라고
할 것이다. 남근목에 사실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더 많은 이유를 산객이 그곳을
가보고서야 알것같다. 찾아가는길도 누워서 떡먹기 보다 더 쉽다.
위에서든 아래서든 무조건 7번국도다. 삼척시 원덕읍 신남항만 찾으면 된다.
위에서는 황영조 기념공원을 지나 장호리 밑 갈남리 신남항이다.
밑에서는 원덕읍을 지나 임원 회센타를 지나 한참을 가면 우측에 신남항이다.
입장료가 거금 3,000원.
할인을 받을려면 30명 정도의 계원을 모집해야 된다.
참고로 이곳 한곳만 볼려고 길을 나서면 시간과 경제적으로 모두 손해이므로
관동 8경의 하나인 죽서루와 추암 촛대바위 공양왕릉을 둘러보면 아마 하루
코스로는 대단히 만족할만한 여행이 될 것이라 조심스럽게 말해본다.
/ 기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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